마가가 전한 복음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1/20/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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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난 금요일 제 마음을 복잡케 하고 힘들게 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교회 건물 사용에 관해서 까다롭게 하는 어떤 분 때문에 제 마음이 계속 편치 않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몇십년 만에 군대 고참에게 느꼈던 그런 느낌을 오랫만에 다시 경험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저께 금요일저녁에 알곡 장막에서 몽골 최유니스 선교사님을 모시고 귀한 간증내지 설교를 듣는데도, 애썼음에도 집중이 잘 안됨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우리 성도님들도 설교에 집중하려고 해도 집중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직장 생활하시면서 생활하시는 분들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말씀 드린 그 분도 그리스도인이요 특별히 나쁜 분도 아닌데 제가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여러분들은 직장 생활하다보면 분명 제가 경험한 것보다 더 어려운 경험을 할텐데 생각하며 여러분들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막모임에서 그런 고민을 나누면서 위로와 격려를 받고 승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 이런 것 가지고 힘들어하는 연약한 자신의 모습을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또, 목사로서의 자격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교회에 까다로운 성도님이 한 분도 안계심에 특별한 감사를 드리고 싶은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까다로운 성도를 만나 고생하는 다른 목사님들의 고민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뭏든 저는 이 일로 인해 어제 거의 오후 2시가 되도록까지 계속 마음이 편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제가 매일 기도를 시작할 때 주님께서 제게 주신 특권과 복을 읽고 선포하면서 시작하는데 기도도 집중이 안되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쉽게 넘길 수 있는 문제를 이렇게 제가 마음쓰는 것을 보면서, 결국 문제는 이 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문제이고 분명 마귀가 이 분을 통해 역사하고 있다는 깨달음을 갖게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지배하려는 잡다한 생각과 관점과 태도를 예수 이름으로 물리치고, 저를 향한 주님의 사랑, 약속, 선언, 소원, 심정, 목적, 의도, 뜻, 계획, 능력, 관점, 음성, 통치, 주권을 내가 선택하기로 하고 주님의 말씀이 나를 지배하도록 크게 소리 내어 선포했습니다.
“주님, 내 감정에 상관 없이, 주님의 저를 향한 사랑을 선택합니다., 주님의 저를 향한 약속을 선택합니다., 주님의 저를 향한 선언을 선택합니다., 주님의 저를 향한 소원, 주님의 저를 향한 심정, 주님의 저를 향한 목적, 주님의 저를 향한 뜻, 주님의 저를 향한 계획을 선택합니다., 주님의 저를 향한 능력, 주님의 저를 향한 관점, 주님의 저를 향한 음성, 주님의 저를 향한 통치와 주권을 선택합니다. 선포합니다. 주님 저를 다스리시고 지배하소서”라고 큰 소리를 내어 선포하며 기도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수 많은 잡다한 음성들과 이 세상의 수 많은 염려들과 생각들이 여러분들을 괴롭히고 혼란케 할 때, 주님의 이름으로 이런 염려와 음성들과 생각들을 쫓아내시고 여러분 자신을 향한 주님의 계획과 뜻과 의도와 관점과 음성을 선택하시고 선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저를 다스리시라고 간구하고 선포한 뒤에 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사랑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용서를 주시고 주님과의 영원한 사랑의 관계를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의를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자나 깨나 주님을 위해 살 수 있는 영원한 목적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주님의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구원을 주시고 영원한 상속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깨끗한 양심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이런 고백과 선포는, 내 자신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은 우리가 처음 구원 받을 때에 필요했던 메시지일 뿐아니라, 현재적으로 구원받는 우리 자신들에게도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위해서 복음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이 복음은 다른 사람들이 구원받도록 전하는 메시지일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현재적으로 적용하면서 살아야 할 메시지입니다. 나는 내가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나는 내가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서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서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 5 그 후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 (공동번역) 복음의 메시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가장 중요한데, 이것이 구원을 받기 전에 이 것을 통해 구원을 얻기 위해 중요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매일 매일 하나님의 자녀로의 삶을 살기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그하므로 먼저 내 자신에게 복음을 항상 선포하므로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승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가 내일부터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큐티를 하게되는데요, 오늘 본문인 마가복음 1:1 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란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복음이란 말은 헬라말로 유안겔리온인데 문자적으로는 좋은 소식이란 뜻인데, 그렇다고 평범한 일반적인 좋은 소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삶의 흐름을 바꿔놓을 정도로 특별히 중요한 좋은 소식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를글면,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전 약 500년쯤 전에, 그리스군이 마라톤 평원 전투에서 페르시아 침략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뒤 각 도시나 사자를 보내어 전한 소식을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마라톤 경기의 유래가 이 승전의 복음을 처음 알린자를 기념하기 위한 것을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전쟁에서 졌던 페르샤의 후손들 이란 사람들은 마라톤 경기에는 참석 안합니다. 몇년 전 이란에서 아시안 게임을 했을 때도 마라톤은 경기 종목에서 빼버렸다고 합니다) 승전의 복음을 전한 그리스의 사자들은 "우리가 여러분을 위해 싸워 승리를 거두었소 이제 여러분은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이오.” 라고 외쳤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은 역사 속에서 발생한 사건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전쟁에 지면 페르샤의 노예가 될뻔했던 그리스인들이 자유인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이 복음이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승리를 통해서 죄인들의 신분을 영원히 변화시키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했음을 알리는 선언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인 것입니다..
또, 예수님과 마가가 살던 당시에 기록된 고대 로마 비석 중에 오늘 본문과 비슷하게 "가이사 아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다고합니다. 그리고 그 비문에 가이사 아구스도의 탄생과 즉위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고합니다. 그러니까, 복음은 전쟁에서의 승리나 황제의 대관식같은 큰 변화를 일으킨 사건에 대한 소식임을 말합니다.
그런데, 마가는 로마 황제의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같은 속성을 가지신 분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를 본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도마는 그 분에 대해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여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약 2000년 당시 "가이사 아구스도 복음은
로마제국에게 굉장한 영향을 끼친 로마 황제의 복음이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이란 상상을 초월한만큼의 영향력을 끼친 복음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은 한 시대 뿐 아니라 모든 시대에 걸쳐서, 한 민족이나 나라가 아니라 모든 민족과 나라에게 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일시적이 아닌, 영원히 지속되는 복음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은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복음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 분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아갈 수 없는 복음입니다. 심지어 죽음도 그 분의 손에서 우리를 빼앗아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깨어있던지 자든지 영원토록 그와 함께 살 수 있는 복음이요; 산자뿐 아니라 죽은 자에게도 주가 되시는 영원한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이란 사실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던 자들을 핍박하던 바울이 예수를 전파하는 자로 돌아서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기억하시죠?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롬 8:4) 그 분이 죽음에서 부활하실 능력까지 있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분이 구태여 왜 이 세상에 왔겠습니까?” 바울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주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롬 8:32) 그리고, 요한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 (요 3:16)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속죄제물이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요일 4:9-10)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놀랍게 얼마나 열정적으로 사랑하시는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 아들도 아끼시지 않고 내 주실 정도 우리를 사랑하시는가를 보여주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기쁘고 복된 소식이란 맣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 20:31) 왜 요한이 이토록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알고 믿기를 원했는가?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란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돕는다면 그 것은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증거하는 것이기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가장 가까이 잘알던 요한은 확신에 차서 또한 이렇게 증거합니다.)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란 말입니다.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들이 기름 부음 받은 자였습니다. 예수님이 왕으로 오신 분이란 말씀입니다.
지금 마가는 마가복음을 통해서 이 왕이신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백성을 무력으로 다스리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백성들을 섬기시는 종으로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승리하셨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왕으로 오신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롬 14:8-9)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이제부터는 자기들 스스로를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대신하여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그를 위하여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고후 5:15)
바로 우리의 주가 되시고, 왕이 되시기 위해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말씀입니다. 왜 이 사실이 복음입니까?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왕이셨을 때 모든 관계의 평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인간과 다른 피조물 사이에 온전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에 보니까 인간이 하나님이 왕이심을 거부하고, 스스로가 왕이 되기로 결정하고 자기 중심의 삶을 살게되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중심주의는 관계를 파괴합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고 왕이 되려는 자기 중심주의 때문에 전쟁과 싸움이 벌어지게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무력으로가 아니라 섬김과 희생으로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간들의 죄의 댓가를 치루시고 그를 믿는자들들은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사랑으로 그를 주인으로 왕으로 모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와 그를 따른 백성들 간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에덴의 복이 회복된 것 이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결론:
마가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이 선언은 그리스도교와 다른 모든 종교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드러냅니다. 팀켈리목사님은 다른 종교의 본질은 조언이지만 그리스도교의 본질은 소식입니다. 다른 종교들은 신과 영원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하고 이렇게 살아야 신 앞에 설 자격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오셨고 섬기셨고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 이 복음때문에 그리스도교는 다른 종교와 완전히 다르며 기쁨이 넘치는 소식인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행할 때 우리가 느끼는 기쁨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기쁨을 느낄 때가 언제입니까? 한국이 축구에서 이겨도 기쁨을 주는데 마라톤 전쟁에서 승리한 소식을 들은 그리스 사람들은 얼마나 기뻐했겠습니까. 일본이 전쟁에서 지고 이제는 일제의 압정에서 해방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한국민족들은 얼마나 기뻐 했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역사 속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사탄을 이기고 구원과 해방을 주신 사건이 참 기쁨의 소식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일시적인 구원과 해방이 아니라, 영원한 구원과 해방을 주시는 영원한기쁨을 주는 소식이란 말씀입니다. (행 20:24; 고전 1:18)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우리의 심령을 뜨겁게 하며 기쁨으로 충만케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팀켈리 목사님의 왕의 십자가 중에서 참고한 내용이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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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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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가 전한 복음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1/20/2019
1.하나님의 아들의 복음: 마가가 살던 당시에 기록된 고대 로마 비석 중에 "가이사 아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새겨진 비석이 있었는데 가이사 아구스도의 탄생과 즉위 과정을 기록한 비석이다. 지금, 마가는 로마 황제의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을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같은 속성을 가지신 분으로 선포하고 있다. 약 2000년 당시 "가이사 아구스도 복음은 로마제국에게 굉장한 영향을 끼친 로마 황제의 복음이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이란 모든 시대와 모든 지역과 모든 민족에게 가장 중요하고 영원한 영향을 끼치는
예수를 믿던 자들을 핍박하던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서 예수를 단순한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되었다. (롬 8:4)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내어 주셔서 오신 분이 예수라고 설명한다. (롬 8:32) 그리고, 사도요한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선포한다. ” (요 3:16)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속죄제물이 되게 하셨다.” (요일 4:9-10)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 아들도 아끼시지 않고 내 주실 정도 우리를 사랑하시는가를 보여주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기쁘고 복된 소식임을 의미한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예수님이 그리스도란 고백이다. 그리스도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으로 이스라엘의 왕들이 기름 부음 받은 자였다. 예수님이 왕으로 오신 분이란 말씀이다. 마가는 이 왕이신 예수님께서 무력으로 다스리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백성들을 섬기시는 종으로서 오셔서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승리하셨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왕으로 오신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는 우리가 주의 것이 되고, 우리가 그 분을 위해서 살고, 우리가 그 분을 주로 모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롬 14:8-9;고후 5:15) 그가 우리를 통치하시는 분이 되도록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란 말씀이다. 왜 이 사실이 복음인가?
에덴동산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겼을 때 모든 관계의 평화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왕이심을 거부하고, 스스로가 왕이 되기로 결정하고 자기 중심의 삶을 살게되었을 때 모든 관계가 파괴되었다. 내가 중심이 되고 왕이 되려는 자기 중심주의 때문에 전쟁과 싸움이 벌어지게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무력으로가 아니라 섬김과 희생으로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간들의 죄의 댓가를 치루셨다. 그를 믿는자들들은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사랑으로 그를 주인으로 그리고 왕으로 모심으로 모든 하나님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성의 회복, 즉 에덴의 삶을 회복케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