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에게 생각을 맞추라" 빌립보서 4:8-9 2/3/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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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에게 생각을 맞추라" 빌립보서 4:8-9 2/3/2019
"형제 여러분, 끝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참되고 고상 (경건) 하고 옳고 순결하고 사랑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이 무엇이든 거기에 미덕이 있고 찬사를 보낼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들을 생각하십시오. 9 또 여러분이 내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행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두가지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라 그리고 행하라입니다. 생각하라라는 명령이 먼저 나옵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게되는 가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한다고 해서 꼭 즉시 행동에 옮긴다거나 항상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주게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 자신을 한번 보면 그렇게 안변한 것 같아도, 뒤돌아보면 그래도 조금이라도 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도 부부싸움을 하지만 옛날에는 매 주 한번씩하던 부부싸움을 지금은 매 달 한번 하고, 옛날에는 하루에 한번 거짓말 했었는데 요새는 일주일에 한번만 하고..과거에는 웬만한 사람들을 다 미워했는데 이제는 몇 사람만 미워하고...과거에는 열등감을 많이 느꼈는데 지금은 덜 느끼고.. 과거에는 교만했는데 지금 조금 겸손해지고.. 그래서 결국, 나쁜 생각을 많이하면 나쁜 사람이 되고, 미워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미워하는 사람, 교만한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 좋은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 사랑을 많이 생각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기자는 “무릇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의 사람됨도 그러하니”라고 말합니다. (잠 23:7) 우리 마음에 가진 생각이 우리의 사람됨을 결정짓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참되고 고상 (honorable 경건)하고 옳고 순결하고 사랑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 미덕, 찬사를 보낼 만한 것들을 생각하라라는 말씀은, 결국 그런 사람이 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100% 참되고 100% 고상하고 100% 옳고 순결하고 100%사랑스럽고 칭찬할만하고 아름다운 덕이 있고 칭송 받을 분인 예수님을 생각하므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택하셔서, 당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항상 생각하므로 예수님을 닮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아셨고 택하셨고 정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성도들에게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라고 명령합니다 (롬 12:2) (마음 = heart가 아니라 mind, mind, understanding, reason 생각,이해, 사고 “changing the way you think” NLT)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의 옛사람의 속성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이해와 사고가 계속적으로 새롭게 변화되어야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지 왕자의 이야기를 잘 압니다. 어느 날 임금님이 궁궐 밖을 나가서 암행 시찰을 하다가 다리 밑에서 한 거지 소년을 보게 되어 왕자로 삼았습니다. 입양이 된 이 소년은 누더기옷을 벗어 던지고 화려하고 멋있는 왕자의 옷을 걸쳤습니다. 이제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신하들의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왕자가 자신이 왕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계속 의심하게됩니다. 모든 환경이 너무나 낯설고 어색했고, 누더기 옷이 더 편한 것같고, 깡통이 밥그릇보다 더 편하고 다리 밑 생활이 더 자유롭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너무나 거지 생활에 익숙해져 있어서 먼저 생각을 바꾸어 나가지 않으면 왕자다운 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는 동화나 소설에 나올 만든 이야기이지만. 실지로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지난날의 생활방식에 얽매여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23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24 하나님을 따라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권고합니다 (엡 4:22-23) 지난 날의 생활방식이 편하기 때문에 자꾸만 옛날 생활로 돌아가고 누더기를 다시 입고싶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옷을 입으란 말씀입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 보다는 거지 왕자처럼, 과거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이 더 편하고 그렇게 다시 살게되기를 원하는 분은 없습니까?
죄의 용서를 받고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의로운 자라고 인정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놀라운 정체성과 특권을 누리고 감사하기 보다는 과거의 죄와 불행과 어둡고 힘들었던 기억에 사로잡혀 지금도 거지 왕자처럼 사는 분은 없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려면 “참되고 고상 (honorable 경건) 하고 옳고 순결하고 사랑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 무엇이든 거기에 미덕이 있고 찬사를 보낼 만한 것들을 생각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여러가지 덕목중에 마지 막 두가지 “미덕”과 “찬사를 보낼 만한 것” 그 앞에 원어 성경에는 만약이란 조건이 붙어 있는데, 그 이유를 앞엣 것은 본인 스스로의 생각, 그리고 “미덕’ 과 “찬사를 보낼 만한 것”은 남들에 대해서 해야할 생각을 말한다고 해석한 주석가가 있었습니다 유오디아 순두게가 서로 다투고 있는데 서로를 생각할 때 문제점을 생각치 말고, 상대방의 미덕과 찬사를 보낼 만한 것들을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화목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다른 지체에 대한 나쁜 생각을 가진 분이 있다면 상대방에게 어떤 미덕이 있는지 어떤 찬사를 보낼 만한 것이 있는지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디오피아 목사에게 대화할 내용일 있어서 전화를 해도 전화도 안받습니다. 3번 text message를 보냈는데도 답장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보낸 TEXT도 그리스도안에서의 사랑을 격려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의도적으로 답을 안하는 것 같아 한마디 해줄까도 생각했었읍니다. . 그런데, 지난 주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전화에 문제가 있어서 답을 못해준 것 미안하다고 그러면서…
우리는 상대방의 사정을 다 모릅니다. 그러면서 함부로 판단하고 아예 단정해 버리고 정죄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하나님도 받아주시겠다는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특별히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상대방에 대해서)_ 제가 무엇이든 거기에 미덕이 있고 찬사를 보낼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들을 생각하므로 그리스도의 생각과 사랑을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갖게될 수 있을까? 그 다음 절 9절을 보겠습니다.
9 또 여러분이 내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행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Fix your thoughts on what)
“여러분이 내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실천하십시오”라고 말씀했는데, 바울이 가르치고 말하고 편지쓰고 보여준 것이 성도들의 생각을 바꾸고 실천까지 할 수 있게된다는 말씀 아닙니까? 우리도 변화된 생각과 변화된 삶을 살려면, 배우고 받아들이고 듣고 보아야합니다. 무엇을 배우고 듣고 보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이 변화됩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제가 설교하는 것을 듣고 받아들이면 생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에 보니까 보면서도 변화된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듣기만하는 것보다 보면서 배울 때 좀 더 분명하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삶을 통해서 말로만 듣던 것을 보게된다면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에 대해 확실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혹시 저의 위선적인 모습을 보고 제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까지 무시하고 무관심하게 듣는 태도입니다. 혹시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회개하시고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래도 옛날 보다는 훨씬 덜 위선적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무엇이라 그러던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직하려고 애쓰는 사람이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가 설교자로서 좋은 본보기가 못되었다 하더라도, 바울같은 그런 본보기가 없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거나 멀리할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 바울의 편지를 받는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에게서 직접 듣고 배우고 보고 배운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우리 곁에 바울과 같은 사도들은 없지만, 우리는 완성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신약성경을 자유자재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배울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우리에게는 좋은 목사와 교사가 필요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17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도록 성경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성령님을 우리 안에 넣어주셔서 그것을 깨닫고 행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 오히려 더 정확하게 그리고 폭 넓게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 뿐 아니라 다른 여러 사도들의 가르침과 삶을 배우고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1500년대 종교개혁 이전에는 로마 캐톨릭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지도 사람들이 성경을 아예 읽지도 못하게했습니다. 사제들 중에서도 특별한 사람들만 성경을 보고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틴루터를 비롯한 종교 개혁자들은 목사와 교사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각 성도가 기록된 말씀과 성령님을 통해서 스스로 하나님을 만나고 듣고 배울 수 있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아기처럼 항상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말씀과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듣고 배울 수 있는 성숙한 경지에 들어가야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스스로가 다른 성도들의 본보기가 되어야합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이 성장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신앙이 제걸음 하거나 오히려 후퇴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그 분명한 이유중의 하나는 자신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는 시간을 갖느냐 아니냐에 있다고 봅니다. (고후 10:5) 그리고 그런 시간을 얼마나 자주 갖느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예수님의 생각과 조율시키는 것입니다.
이 것은 마치 악기를 조율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율기를 악기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악기를 조율기에 맞추는 것처럼 내 생각을 예수님의 생각에 맞추는 것입니다. (기도는 예수님을 내 생각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주님에게 맞추는 것입니다. ) 그러나, 우리 안에서 들려오는 잡생각도 많고 우리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도 많기 때문에 우리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런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지난 주에 저 쪽 구석에 있는 복도로 들어가서 키타를 조율 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찬양팀 찬양과 반주 소리때문에 조율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 복도구석으로 간것입니다. 찬양팀의 찬양 피아노 찬송 반주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내가 주님의 말씀에 내 생각을 조율하려면 좋은 일들도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키타를 조율하고 나니까 여러분들 저희들이 특송할 때에 키타 소리가 아름답게 들리지 않았습니까? 주님의 생각에 우리들의 생각을 조율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의 생각을 주님에게 조율시키면 예수님을 닮아가고 드러내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5:15-16에 보면 “큰 무리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또 자기들의 병도 고치고자 하여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도 전하고 병자를 고칠 수 있는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외딴 곳으로 물러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에 대한 분명한 우선권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조율하는 시간을 그 어떤 중요한 것보다도 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항상 드러나는 삶과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루종일 수 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소리에 접하게됩니다. 세상의 온갖 사상과 관점을 배우게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대신에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시간을 반드시 가져야합니다. (고후 10:5)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든 큐티를 통해서든 하나님과 대화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시간을 가져야합니다. 우리가 그런 시간을 가질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닮는 생각을 하게될 것입니다
또, 지난 주 큐티 본문인 마가 복음 1장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막 1:35-38 예수님께서 아주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외딴 곳으로 나가셔서, 거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36 그 때에 시몬과 그의 일행이 예수를 찾아 나섰다가 예수를 만나자 "모두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까운 여러 고을로 가자. 거기에서도 내가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제자들은 사람들의 요구때문에 예수님을 찾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람들의 요구에 대꾸도 안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사람들의 의견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기쁘하시는 뜻을 알고 실천하는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이런 삶이 평화의 하나님이 우리들과 함께하시는 삶이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인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우리의 생각을 온전히 복종시키는 시간, 그리스도의 말씀에 우리의 생각을 조율시키는 시간을 가지므로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형제 여러분, 끝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참되고 고상 (경건) 하고 옳고 순결하고 사랑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이 무엇이든 거기에 미덕이 있고 찬사를 보낼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들을 생각하십시오. 9 또 여러분이 내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행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두가지를 명령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라 그리고 행하라입니다. 생각하라라는 명령이 먼저 나옵니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게되는 가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한다고 해서 꼭 즉시 행동에 옮긴다거나 항상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주게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 자신을 한번 보면 그렇게 안변한 것 같아도, 뒤돌아보면 그래도 조금이라도 변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도 부부싸움을 하지만 옛날에는 매 주 한번씩하던 부부싸움을 지금은 매 달 한번 하고, 옛날에는 하루에 한번 거짓말 했었는데 요새는 일주일에 한번만 하고..과거에는 웬만한 사람들을 다 미워했는데 이제는 몇 사람만 미워하고...과거에는 열등감을 많이 느꼈는데 지금은 덜 느끼고.. 과거에는 교만했는데 지금 조금 겸손해지고.. 그래서 결국, 나쁜 생각을 많이하면 나쁜 사람이 되고, 미워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미워하는 사람, 교만한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 좋은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 사랑을 많이 생각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기자는 “무릇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의 사람됨도 그러하니”라고 말합니다. (잠 23:7) 우리 마음에 가진 생각이 우리의 사람됨을 결정짓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참되고 고상 (honorable 경건)하고 옳고 순결하고 사랑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 미덕, 찬사를 보낼 만한 것들을 생각하라라는 말씀은, 결국 그런 사람이 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100% 참되고 100% 고상하고 100% 옳고 순결하고 100%사랑스럽고 칭찬할만하고 아름다운 덕이 있고 칭송 받을 분인 예수님을 생각하므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택하셔서, 당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항상 생각하므로 예수님을 닮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아셨고 택하셨고 정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성도들에게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라고 명령합니다 (롬 12:2) (마음 = heart가 아니라 mind, mind, understanding, reason 생각,이해, 사고 “changing the way you think” NLT)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의 옛사람의 속성과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영향을 받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이해와 사고가 계속적으로 새롭게 변화되어야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지 왕자의 이야기를 잘 압니다. 어느 날 임금님이 궁궐 밖을 나가서 암행 시찰을 하다가 다리 밑에서 한 거지 소년을 보게 되어 왕자로 삼았습니다. 입양이 된 이 소년은 누더기옷을 벗어 던지고 화려하고 멋있는 왕자의 옷을 걸쳤습니다. 이제는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신하들의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왕자가 자신이 왕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계속 의심하게됩니다. 모든 환경이 너무나 낯설고 어색했고, 누더기 옷이 더 편한 것같고, 깡통이 밥그릇보다 더 편하고 다리 밑 생활이 더 자유롭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너무나 거지 생활에 익숙해져 있어서 먼저 생각을 바꾸어 나가지 않으면 왕자다운 생활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이 이야기는 동화나 소설에 나올 만든 이야기이지만. 실지로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에게 “지난날의 생활방식에 얽매여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23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24 하나님을 따라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권고합니다 (엡 4:22-23) 지난 날의 생활방식이 편하기 때문에 자꾸만 옛날 생활로 돌아가고 누더기를 다시 입고싶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옷을 입으란 말씀입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 보다는 거지 왕자처럼, 과거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이 더 편하고 그렇게 다시 살게되기를 원하는 분은 없습니까?
죄의 용서를 받고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의로운 자라고 인정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놀라운 정체성과 특권을 누리고 감사하기 보다는 과거의 죄와 불행과 어둡고 힘들었던 기억에 사로잡혀 지금도 거지 왕자처럼 사는 분은 없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려면 “참되고 고상 (honorable 경건) 하고 옳고 순결하고 사랑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 무엇이든 거기에 미덕이 있고 찬사를 보낼 만한 것들을 생각해야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여러가지 덕목중에 마지 막 두가지 “미덕”과 “찬사를 보낼 만한 것” 그 앞에 원어 성경에는 만약이란 조건이 붙어 있는데, 그 이유를 앞엣 것은 본인 스스로의 생각, 그리고 “미덕’ 과 “찬사를 보낼 만한 것”은 남들에 대해서 해야할 생각을 말한다고 해석한 주석가가 있었습니다 유오디아 순두게가 서로 다투고 있는데 서로를 생각할 때 문제점을 생각치 말고, 상대방의 미덕과 찬사를 보낼 만한 것들을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화목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가운데도 다른 지체에 대한 나쁜 생각을 가진 분이 있다면 상대방에게 어떤 미덕이 있는지 어떤 찬사를 보낼 만한 것이 있는지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디오피아 목사에게 대화할 내용일 있어서 전화를 해도 전화도 안받습니다. 3번 text message를 보냈는데도 답장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보낸 TEXT도 그리스도안에서의 사랑을 격려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의도적으로 답을 안하는 것 같아 한마디 해줄까도 생각했었읍니다. . 그런데, 지난 주에 저를 찾아왔습니다.
전화에 문제가 있어서 답을 못해준 것 미안하다고 그러면서…
우리는 상대방의 사정을 다 모릅니다. 그러면서 함부로 판단하고 아예 단정해 버리고 정죄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하나님도 받아주시겠다는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특별히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상대방에 대해서)_ 제가 무엇이든 거기에 미덕이 있고 찬사를 보낼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들을 생각하므로 그리스도의 생각과 사랑을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갖게될 수 있을까? 그 다음 절 9절을 보겠습니다.
9 또 여러분이 내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행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실 것입니다. (Fix your thoughts on what)
“여러분이 내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실천하십시오”라고 말씀했는데, 바울이 가르치고 말하고 편지쓰고 보여준 것이 성도들의 생각을 바꾸고 실천까지 할 수 있게된다는 말씀 아닙니까? 우리도 변화된 생각과 변화된 삶을 살려면, 배우고 받아들이고 듣고 보아야합니다. 무엇을 배우고 듣고 보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이 변화됩니다.
여러분들도 지금 제가 설교하는 것을 듣고 받아들이면 생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에 보니까 보면서도 변화된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듣기만하는 것보다 보면서 배울 때 좀 더 분명하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삶을 통해서 말로만 듣던 것을 보게된다면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에 대해 확실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혹시 저의 위선적인 모습을 보고 제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까지 무시하고 무관심하게 듣는 태도입니다. 혹시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회개하시고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래도 옛날 보다는 훨씬 덜 위선적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무엇이라 그러던 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직하려고 애쓰는 사람이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가 설교자로서 좋은 본보기가 못되었다 하더라도, 바울같은 그런 본보기가 없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거나 멀리할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 바울의 편지를 받는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에게서 직접 듣고 배우고 보고 배운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신약성경이 완성되기 전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우리 곁에 바울과 같은 사도들은 없지만, 우리는 완성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신약성경을 자유자재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배울 수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우리에게는 좋은 목사와 교사가 필요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17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도록 성경을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성령님을 우리 안에 넣어주셔서 그것을 깨닫고 행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 오히려 더 정확하게 그리고 폭 넓게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 뿐 아니라 다른 여러 사도들의 가르침과 삶을 배우고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1500년대 종교개혁 이전에는 로마 캐톨릭 교회에서 성경을 가르치지도 사람들이 성경을 아예 읽지도 못하게했습니다. 사제들 중에서도 특별한 사람들만 성경을 보고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틴루터를 비롯한 종교 개혁자들은 목사와 교사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각 성도가 기록된 말씀과 성령님을 통해서 스스로 하나님을 만나고 듣고 배울 수 있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아기처럼 항상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말씀과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듣고 배울 수 있는 성숙한 경지에 들어가야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스스로가 다른 성도들의 본보기가 되어야합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이 성장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신앙이 제걸음 하거나 오히려 후퇴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그 분명한 이유중의 하나는 자신의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는 시간을 갖느냐 아니냐에 있다고 봅니다. (고후 10:5) 그리고 그런 시간을 얼마나 자주 갖느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예수님의 생각과 조율시키는 것입니다.
이 것은 마치 악기를 조율하는 것과 같습니다. 조율기를 악기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악기를 조율기에 맞추는 것처럼 내 생각을 예수님의 생각에 맞추는 것입니다. (기도는 예수님을 내 생각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주님에게 맞추는 것입니다. ) 그러나, 우리 안에서 들려오는 잡생각도 많고 우리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도 많기 때문에 우리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포기하기 쉽습니다 그런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지난 주에 저 쪽 구석에 있는 복도로 들어가서 키타를 조율 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찬양팀 찬양과 반주 소리때문에 조율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 복도구석으로 간것입니다. 찬양팀의 찬양 피아노 찬송 반주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나 내가 주님의 말씀에 내 생각을 조율하려면 좋은 일들도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키타를 조율하고 나니까 여러분들 저희들이 특송할 때에 키타 소리가 아름답게 들리지 않았습니까? 주님의 생각에 우리들의 생각을 조율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리의 생각을 주님에게 조율시키면 예수님을 닮아가고 드러내는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5:15-16에 보면 “큰 무리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또 자기들의 병도 고치고자 하여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도 전하고 병자를 고칠 수 있는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그러나 예수께서는 외딴 곳으로 물러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에 대한 분명한 우선권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조율하는 시간을 그 어떤 중요한 것보다도 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항상 드러나는 삶과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루종일 수 없이 쏟아지는 정보와 소리에 접하게됩니다. 세상의 온갖 사상과 관점을 배우게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대신에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시간을 반드시 가져야합니다. (고후 10:5)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든 큐티를 통해서든 하나님과 대화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시간을 가져야합니다. 우리가 그런 시간을 가질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닮는 생각을 하게될 것입니다
또, 지난 주 큐티 본문인 마가 복음 1장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막 1:35-38 예수님께서 아주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외딴 곳으로 나가셔서, 거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36 그 때에 시몬과 그의 일행이 예수를 찾아 나섰다가 예수를 만나자 "모두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8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까운 여러 고을로 가자. 거기에서도 내가 말씀을 선포해야 하겠다. 나는 이 일을 하러 왔다."
제자들은 사람들의 요구때문에 예수님을 찾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람들의 요구에 대꾸도 안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사람들의 의견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을 기쁘하시는 뜻을 알고 실천하는 삶을 살게될 것입니다. 이런 삶이 평화의 하나님이 우리들과 함께하시는 삶이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인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우리의 생각을 온전히 복종시키는 시간, 그리스도의 말씀에 우리의 생각을 조율시키는 시간을 가지므로 그리스도의 생각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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