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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기쁨과 만족" 빌 4:10-20 2/17/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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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2)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사도바울이 빌립보 교회가 파송한 에바브로디와 그가 가지고 온 헌금을 받고 자신의 괴로움에 함께 동참하여준 그들의 사랑으로 인해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본문 15절과 16절을 보면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떠나자 마자부터 계속 바울의 쓸 것을 도와 주었던 유일한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빌립보를 떠나 데살로니가에서 잠간 사역할 때에도 바울이 쓸 것을 여러 번 보내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도 헌금을 보내주었습니다

이제 약 10년 정도쯤 얼굴을 보지 못한 빌립보교회가 아직도 자신을 기억하고 어디있는지 알아내어 에바브로디도와 함께 헌금을 보낸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의 사랑을 받고 이토록 기뻐한 것입니다. 

저도 제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신학교에 다닐 때 섬기던 교회에서 알게된 한 집사님이, 그 교회를 떠난 후 약 10년이상 뵙지 못했음에도, 제가 멕시코에 있다는 것을 알고 사랑의 편지와 함께 적지 않은 액수의 헌금을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그 이 후 제가 멕시코에서 철 수한 이 후에도 2년전까지 거의 20년 동안 매해 적지 않은 헌금을 보내주었습니다.  그 분의 사랑 때문에 많은 격려와 기쁨이 되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바울에게 큰 기쁨이 있었던 것도.  빌립보 성도들로부터 메가톤급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기쁨의 원천은 사랑하는 성도간의 관계인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기쁨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들입니다.

“너희가 나의 계명을 지키면, 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나의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12  나의 계명은 이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 15:10-12)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있게 되고 기쁨이 넘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로 인해 큰 기쁨을 느끼면서도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하며 안타까움을 느낀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토록 바울을 사랑했지만 막상 “디모데외에는 그들의 형편을 진심으로 염려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21 모두 다 자기의 일에만 관심이 있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합니다.” (빌 2:20-21)

그 당시에 빌립보 교회처럼 오랫동안 떨어져 있으면서도 바울을 위해 항상 생각하고 기도하고 헌금을 보낸 교회들도 없었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빌립보 교회를 또 그토록 사랑한 사람들도 바울 자신과 디모데 밖에는 없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리와 시간과 환경을 초월해서 지속적으로 서로를  진심으로 염려해주고 사랑하는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관계를 불편하게 혹은 비정상적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서울에 있는 한국 선교 백주년기념교회 담임 목사님으러 섬겼던 교회 안팎으로 많은 존경받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이 분이 3,4개월 전에 정년 은퇴를 하시면서 아예 경상도의 깊은 산골에 집을 사서 그리로 이사가셨습니다.  이 것을 두고 너도 나도 한국교회에 좋은 모범이 되었다고 칭찬이 자자합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목사가 사임을 하거나 은퇴를 하면 사역하던 교회에서 떠나 주는 것이 교회와 후임목회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은 뒤에서 비난을 받습니다. 

전임목사가 필요 이상으로 간섭하는 것도 문제지만 새 담임목사가 전임목사를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고 전임목사가 섬기던 성도들과 연관을 끊어야 하는 것도 전혀 성서적이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들이 후임할 후계자들을 양성치 못한 것이 가장 큰 근본문제임도 인정합니다)

빌립보교회에도 목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편지하면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한다고 서문을 시작합니다  감독들이 바로 오늘날 목사들을 말합니다 이미 교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사도바울을 귀찮은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속적인 사랑의 관계를 갖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들이 새목회자를 모실 때,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분을 모시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분이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이아브라함 목사님이나, 최바울 목사님이나 양목사님이나 박목사를 불편해 하지 않고, 또 제가 여러분과 함께 하더라도 동역자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분이어야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눈치 안보고 전임 목사님들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목사님을 모시기를 저는 소원합니다. 

새로 담임목회를 하실 분은 여러분을 자신의 양떼라고 생각하기 전에 주님의 양떼라고 생각하는 분으로서, 자신을 기쁘게 하기보다 먼저 주님을 기쁘시게할가를 생각하는 분을 모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21세기 침례교회에 소속해 있거나 소속했던 모든 성도들이 자유롭게 사랑을 나누고 주 안에서 서로에게 큰 기쁨이 되어주는 운명공동체로 지속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은 자신이 빌립보 성도들이 파송한 에바브로디도와 또 함께보낸 헌금을 받고 크게 기뻐했지만 그들이 보낸 돈 자체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자신은 배부르던지 배고프던지, 풍부하던지 궁핍하든지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만약 사도바울이 그들의 사랑보다는 그들이 보낸 헌금 때문에 크게 기뻐하였다면 그 것이 진정한 사랑의 관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사랑때문에 큰 기쁨을 주는 관계는 물질을 초월해서 누릴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합니다  그럴려면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워야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집에 TV가 있다면 참으로 행복하고 만족하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외삼촌이 미국에서 텔레비젼을 직접 사가지고 오셨습니다  너무 익싸이팅했는데 외삼촌때문에라기 보다는 텔레비젼으로 인한 기쁨이 더 컷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보다 선물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집이 없어 만족할 수 없는 자녀들이 자칫 부모님보다 부모님이 물려줄 집을 더 사랑하고 심지어는 부모님이 빨리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죄까지 저지를 수 있습니다. 

TV던 자동차던 집이던 이런 소유물들을 만족의 기준이나 조건으로 삼는 사람들은 자칫 다른 사람과의 관계성 보다 이런 소유물을 더 중요시 여길 수 있습니다.  또 소유물을 만족의 조건으로 삼는 사람들은 더욱 돈을 벌려고 하고 돈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족하기를 배우지 못하면 돈이 우상이 될 뿐 아니라 그 결과로 다른 사람과도 진정한 관계성을 맺기 쉽지 않습니다.  사랑의 관계성을 통한 기쁨도 체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돈과 만족에 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전도서 5:10) “돈 좋아하는 사람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부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이 벌어도 만족하지 못하니, 돈을 많이 버는 것도 헛되다.”  (히브리서 13:5) “돈을 사랑하지 말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주께서는 "내가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딤전 6:6-10) “자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경건이 큰 이득을 줍니다.  (자족할 줄 아는 것 = 경건)  7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 아무것도 가지고 떠나갈 수 없습니다. 8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9 그러나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도 해로운 욕심에 떨어집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합니다. 10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결국, 모든 악의 뿌리인 돈을 사랑하는 이유는 자족할 줄 모르는 마음에서 옵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떤 형편에도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전에는 자족하는 법을 몰랐다는 뜻입니다.  저절로 자족하게 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능력이 예수님 안에 있음을 배웠는가? 그는 분명 여러 상황 속에서 여러가지 경험을 통해서 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가졌던 분명한 배움의 경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사도바울이 자신이 앓고 있던 심한 병에서 낫게해달라고 3번 주님께 간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괴롭혔던 병에서 고침을 받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족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주님의 은혜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어떤 성경은 “내 사랑이 네가 필요로한 전부이다"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사랑의 하나님이, 어찌 (우리가 꼭 필요하다면)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겠는가”란  주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의 사랑때문에 만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운 것입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 히브리서도 결국 같은 말씀을 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주께서는 "내가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6 그래서 우리는 담대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니, 내게 두려움이 없다. 누가 감히 내게 손을 대랴?"  (히브리서 13:5-6)

죠지뮬러가 일생동안 15만명의 고아를 돌보면서 그 삶 속에 얼마나 걱정과 염려가 많았겠습니까? 그럼에도 그는 하루를 간구하는 기도대신 자신의 영혼을 행복하게 하는 시간으로 시작했다고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자신이 왜 복된 존재인지를 읽고 묵상하고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만든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없는 것 필요한 것을 바라보기 전에 이미 자신이 주 안에서 갖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받은 복을 세어보는 삶을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죄의 용서와 구원과 영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란 놀라운 정체성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영원하고 참된 사랑의 관계와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으로도 살 수 없고 구할 수 없고 또 이 세상 모든 것을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이 귀한 것들을 소유한 내가 만족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귀중한 생명의 댓가로 주신 이 귀한 선물들을 돌아보고 감사하고 기뻐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만족하지 않는다면 큰 죄일 것입니다.

물론 자족하다는 것은 고통 자체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 하였도다" 라고 말합니다 괴로움 가운데 있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자족한다는 것은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 병으로 인한  육체의 고통, 사랑하는 식구들이나 친구들로 인한 마음의 고통등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월드컵 죽구 경기를 실황중계로 보지 않고 한국팀이 이긴 경기만 경기 후에 보았습니다. 흥분하지 않고 느긋하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현재의 고통의 결과가 인생의 승리로 천국으로 끝날 것을 알기 때문에 고통 가운데도 미리 즐거워하고 만족할 수 있습니다.  한골 먹어도 두골을 넣게될 것을 미리 알기 때문에 여유있게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핍박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37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고 예수님이 내게 가장 귀한 분이요 또한 가장 필요한 분이시며 그 분이 내 안에 계셔서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는 분임을 안다면, 그리하여 그리스도가 나의 만족의 기준이되고 충족의 조건이 된다면, 자족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을 항상 바꾸지는 않으시지만, 그러나 매일 우리가 우리의 생각들의 촛점을 예수님에게 맟주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온전히 예수님께 사로잡힌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만족을 배우고 진정한 사랑과 기쁨을 나누는 삶을 살 수 있게될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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