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구원의 길, 예수” 이사야 53:5-6; 요한복음 10:27-28 3/17/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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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구원의 길, 예수” 이사야 53:5-6; 요한복음 10:27-28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5,6 )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7-28)
먼저 노기용 성도님의 88회 생신을 맞이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함께 감사하며 축하해 주시기 위해서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우리 노기용 성도님은 앞으로 여호수아처럼, 노년에도 불구하고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라는 확고한 결단으로 그 인생 끝나는 날까지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실 저희 장인어른도 딱 8일 전에 86세 생신을 맞이하셨습니다. 그래서 집안식구들이 함께 모였는데, 저는 모르지만, 저희 아내쪽 식구들이 잘 아는 어떤 50대 의사가 갑자기 죽게된 것과 또 다른 최근에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이야기의 주제가 우리가 죽으면 “화장을 할 것인가, 아니면 묘에 묻힐 것인가?”란 주제로 흐르게되었습니다. 원래 저희 부부는 화장을 하자 그랬는데, 제 아내가 제가 먼저 죽으면 그리울 때 산소마저 없다면 힘들 것 같다고 하여 우리 부부는 먼저 죽는 사람은 묘지에 그리고 나중에 죽는 사람은 화장하기로 일단 동의했습니다.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좀 슬픈이야기지요, 그렇지만 죽음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음을 미리 생각하고 계획하고 준비한다면, 우리의 시체를 화장할 것인가 묘에 묻을 것인가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일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히 9:27절) 우리의 인생이 이 땅에서 살다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하나님께서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평가에 따라 “악인은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삶으로 들어갈 것이다.”고 심판주인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 25:46)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고 내생을 준비해야할까요? 이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 수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중 어떤 종교를 가져야할까?
지난 금요일 뉴질랜드에서 거의 50명이나 되는 이슬람교도들이 살해당하는 끔직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날 세계 전역에 10억 이 넘는 이슬람교도들이 있습니다. 이슬람교를 모하메드교라고도 부릅니다. 모하메드가 계시를 받아 경전을 기록했다고 믿고 시작한 종교이며 모하메드가 예수보다 더 위대한 마지막 선지자라고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슬람교도들은 선한 행동을 통해서 영혼이 정화되고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경전에 의하면 모하메드 자신도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습니다. (Quran 31:34; 46:9) 그래서 오늘 회교도들이 모하메드란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이름 뒤에 “Peace be upon him,” 그 분 위에 평화가 있기를 하고 빕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영원한 행방도 분명치 않기 때문에, 이슬람교도들은 모하메드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신에게 비는 것입니다. 이슬람교는 자기 자신도 구원받았는지 조차 모하메드가 시작한 종교입니다.
불교에 대해서도 한 말씀 드립니다. 성철스님하면 불교인 뿐 아니라 모든 한국인들이 잘 아는 분입니다. 성철스님은 8년 동안 눕지 않고 앉아서 수양한 분으로 유명합니다. 그 분은 10년동안 자신이 거하는 암자 주위에 철조망을 치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던 세계사에 보기힘든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초인적인 극기 수행을 하셨던 분입니다, 그 분은 첫딸을 임신하고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출가하였는데 이 아이가13살 때 처음 삼촌과 함께 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성철스님은 딸의 얼굴도 보지 않고 “가라, 가" 소리지르며 쫓아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17살 때 다시 찾아왔을 때 잠간 대화를 해준 것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철저히 도를 닦은 분입니까? 그런데 성철스님이 이 딸을 생각하며 죽기 전에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은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죄 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딸 필히와 54년을 단절하고 살았는데 죽을 임종 시에 찾게 되었다
필히야 내가 잘못했다 내 인생을 잘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이 유서의 내용은 불교를 비방하거나 비하하기 위한 과장된 내용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또, 유대교인들은 율법을 열심히 지키므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열심히 율법을 지켰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 누구도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될 사람은 없다고 말합니다.. (빌 2:16)
혹시 오늘 방문하신 분들 중에 카톨릭교회에 다니시는 분 계시면 이해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카톨릭 교회에서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카톨릭 교리에 의하면 누구든지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는 저주를 받을 자라고 카톨릭 교리는 가르칩니다. 그래서, 심지어 교황도 이 땅에 있는동안에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과 함께 구원 받을 만한 선행을 한자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그 누구도 감히 하나님께서 만족할만한 선행을 살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든 종교들이 자신들의 노력과 수양과 선행으로 의롭게 사는 것을 목적하지만, 그런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여겨질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 나는 특별히 악한 삶을 살지는 않았으니까 천국에 가겠지하는 분이 계시면 소망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보다 훨씬 더 열심히 노력하고 수양을 하고 의롭게 살려고 한 분들도 구원을 확신치 못했습니다. 인간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죄로 인해 그 마음이 만물 중에 가장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렘 17:9) 그러므로, 인간의 의로운 행위도 더러운 걸레 같다고 말합니다. (사 64:6) 인간은 이렇게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구원주가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불교신문에 보니까, 성철스님과 법정스님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법정스님이 성철 스님에게 물어봅니다. “정말 사람이 성불할 수 있습니까?” (불교 용어로 깨달아서 번뇌로부터 벗어나 부처가 되는 것 혹은 해탈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구원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법정스님도 자신이 해탈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성철 스님이 길게 설명하며 성불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성불했다고 답변을 못합니다. 한국의 가장 위대한 법정스님과 성철스님도 자신들이 성불하지 못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제가 약 45년 전에 한국의 제주도 한라산에 올라갔다가 그 당시 73세이셨던 고승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17세때 한라산에 들어오셔서 50년 이상을 수행을 하신 것입니다 제가 그 스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해탈하셨냐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직 못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수행하셨음에도 해탈을 못하셨냐고 여쭈어 보니까, 아직도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시커먼 것이 있는 그 것을 끄집어내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 저는 속으로 이 시커먼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죄가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성철스님이 유서를 쓰면서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은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죄 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절규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줄 구원주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5,6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인해 우리대신 형벌 받으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인간을 양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양은 순한 동물로 알려져있습니다. 보통 온순한 사람을 가르켜 양처럼 순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양을 키워본 분들에 의하면 양처럼 고집스러운 동물이 없다고 합니다.
앞에 낭떠러지가 있어도 자기 멋대로 앞으로 가고, 함께 가다가 남의 밭에 갑자기 뛰어들어가 피해를 일으키고, 목자가 잠간 쉬는 사이에 사방으로 흩어져서 목자들의 진땀을 빼게도합니다. 추운 겨울이 되면 일부러 양의 털을 깎는 다고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키 털을 믿고 혼자 있다가 얼어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합니다. 철저하게 고집스럽고 자기 중심적인 양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6)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켰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 모두의 죄악의 내용이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길로 간 것입니다. 한 길 앞치도 모르면서 목자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자기 뜻대로 다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양같다고 말합니다” 예외가 없다는 말입니다. 겉으로 착해보이던 악해 보이던, 외성적인던 내성적이던 온순하던 공격적이든, 온유하던 난폭하던, 우리는 다 양처럼 그릇 행하여 (길을 잃고) 각기 제 길로 갔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기를 거부하고, 알지 못하면서도 각기 제길로 가는 것이 저와 여러분의 본성이요 또 죄악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각기 자기가 제길로 가면서,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가면, 성실하게 가면 최선을 다해 가면 목적지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산 정상에 계신 분이요 이길로 가던 저길로 가든 이 종교로 가던 저 종교로 가던 그 정상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구원에 이를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저나 여러분이나 그 누구도 그 정상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 14:12)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 정상에 계신 분에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 정상에 계신 분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이 분이 예수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7-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생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누구한테 주느냐 “내 양”에게 준다고 말합니다. 영생을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목자로 삼은 양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목자로 삼고 인생의 운전대를 예수님에게 맡긴 분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내가 내인생의 주인노릇하던 분이, 예수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삼는 것을 회개라고 말하고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회개하고 믿는 분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예수를 인생의 주인으로, 인생의 목자로 삼지 않고, 각기 제길로 가는 인생을 사는 분이 있다면, 오늘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구원받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전도를 하다보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겠지만, 인생을 내가 살고싶은대로 즐기다가 죽기 5분전에 회개하고 천국 가겠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운전하다 어떤 스티커를 보았는데 거기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죽기 5분전에 회개하려고 하는 사람은 10분 전에 데려가신다.” 여러분이 돌아가시기 하루 전부터 회개하고 믿겠다고 계획하고 계시다면 이틀 전에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돌아가시기 1년쯤 전에 회개하고 믿겠다고 계획하신다면 2년전에 데려가실 수 있습니다. 가운데 아직도 예수님을 인생의 구원주로 주인으로 모시지 않은 분들은 미루지 마시고 오늘 이시간에 내 인생의 운전대를 예수님에게 드리고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목자로 받아들이시고 구원 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인생의 구원주로 주인으로 이미 과거에 모셔들였지만 실지로의 삶 속에서는 자기 뜻대로 사는 분들, 각기 제길로 가는 분들을 위해서도 한 말씀드립니다.
좀 전에 읽었던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7-28) 주님께서 아무에게나 영생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양, 즉 예수님을 목자로 모신 자들에게 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목자로 모신 양들의 특징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목자되신 예수님은 양을 알며, 내 양은 나를 따른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여러분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주님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다른 것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시간을 드리지만, 막상 주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은 아깝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며 내가 보기에 좋은대로 자기를 고집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삶을 살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고 그런 삶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진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상상으로 만든 예수님을 믿는 것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구원 받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께서는 나는 너를 안 적이 없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따른다고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각 각 자기 길을 가려고 하는 양의 본성이 남아있습니다. 양같은 어리석음과 고집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한눈을 팔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따르려면 각 각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한다고 말씀합니다. (눅 9 : 23)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내 자신을 부인해 보십시요. 섭섭한 마음, 미워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무시하는 마음 용서치 못하는 마음, 원수를 원수로 갚고저 하는 마음. 악을 악으로 갚고저 하는 마음, 쾌락을 앞세우는 마음,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인정받고저 하는 마음, 내 뜻대로 살고싶은 이런 마음들을 부인해 보십시요. 이 것이 나를 부인하는 것이요 나를 부인하게 되면 불행이 아니라 천국을 경험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경험할 것입니다.
또, 날마다 제십자가를 지고 따라야지만 주님을 따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십자가를 지어야 마땅 할 흉악한 죄인, 예수님의 구원으로만 벗어날 수 있는 철저히 자기 중심의 흉악한 죄인임을 날마다 인정하며 예수님을 따라가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삶을 사게되면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의 삶은 죽은 다음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이미 시작됩니다. 천국이란 영어로 the Kingdom of Heaven입니다. 예수님이 왕으로서 다스리시고 인정되는 곳이 천국입니다. 내 심령 속에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살면 천국을 이루는 삶을 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제멋대로 살다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이미 천국의 삶을 살던 사람들이 죽어서 들어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려는 의도가 없다면 천국의 삶이 아니라 세상사람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뜻대로 산 분들, 오늘부터 각기 내길로 가던 습관을 버리고 자기룰 부인하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는 새로운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5,6 )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7-28)
먼저 노기용 성도님의 88회 생신을 맞이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함께 감사하며 축하해 주시기 위해서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우리 노기용 성도님은 앞으로 여호수아처럼, 노년에도 불구하고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라는 확고한 결단으로 그 인생 끝나는 날까지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실 저희 장인어른도 딱 8일 전에 86세 생신을 맞이하셨습니다. 그래서 집안식구들이 함께 모였는데, 저는 모르지만, 저희 아내쪽 식구들이 잘 아는 어떤 50대 의사가 갑자기 죽게된 것과 또 다른 최근에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이야기의 주제가 우리가 죽으면 “화장을 할 것인가, 아니면 묘에 묻힐 것인가?”란 주제로 흐르게되었습니다. 원래 저희 부부는 화장을 하자 그랬는데, 제 아내가 제가 먼저 죽으면 그리울 때 산소마저 없다면 힘들 것 같다고 하여 우리 부부는 먼저 죽는 사람은 묘지에 그리고 나중에 죽는 사람은 화장하기로 일단 동의했습니다.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좀 슬픈이야기지요, 그렇지만 죽음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한다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음을 미리 생각하고 계획하고 준비한다면, 우리의 시체를 화장할 것인가 묘에 묻을 것인가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일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히 9:27절) 우리의 인생이 이 땅에서 살다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를 하나님께서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평가에 따라 “악인은 영원한 형벌로 들어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삶으로 들어갈 것이다.”고 심판주인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 25:46)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고 내생을 준비해야할까요? 이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 수많은 종교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중 어떤 종교를 가져야할까?
지난 금요일 뉴질랜드에서 거의 50명이나 되는 이슬람교도들이 살해당하는 끔직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날 세계 전역에 10억 이 넘는 이슬람교도들이 있습니다. 이슬람교를 모하메드교라고도 부릅니다. 모하메드가 계시를 받아 경전을 기록했다고 믿고 시작한 종교이며 모하메드가 예수보다 더 위대한 마지막 선지자라고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슬람교도들은 선한 행동을 통해서 영혼이 정화되고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경전에 의하면 모하메드 자신도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습니다. (Quran 31:34; 46:9) 그래서 오늘 회교도들이 모하메드란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 이름 뒤에 “Peace be upon him,” 그 분 위에 평화가 있기를 하고 빕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영원한 행방도 분명치 않기 때문에, 이슬람교도들은 모하메드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신에게 비는 것입니다. 이슬람교는 자기 자신도 구원받았는지 조차 모하메드가 시작한 종교입니다.
불교에 대해서도 한 말씀 드립니다. 성철스님하면 불교인 뿐 아니라 모든 한국인들이 잘 아는 분입니다. 성철스님은 8년 동안 눕지 않고 앉아서 수양한 분으로 유명합니다. 그 분은 10년동안 자신이 거하는 암자 주위에 철조망을 치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던 세계사에 보기힘든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초인적인 극기 수행을 하셨던 분입니다, 그 분은 첫딸을 임신하고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출가하였는데 이 아이가13살 때 처음 삼촌과 함께 아버지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성철스님은 딸의 얼굴도 보지 않고 “가라, 가" 소리지르며 쫓아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17살 때 다시 찾아왔을 때 잠간 대화를 해준 것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철저히 도를 닦은 분입니까? 그런데 성철스님이 이 딸을 생각하며 죽기 전에 이런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은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죄 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딸 필히와 54년을 단절하고 살았는데 죽을 임종 시에 찾게 되었다
필히야 내가 잘못했다 내 인생을 잘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이 유서의 내용은 불교를 비방하거나 비하하기 위한 과장된 내용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또, 유대교인들은 율법을 열심히 지키므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열심히 율법을 지켰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 누구도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될 사람은 없다고 말합니다.. (빌 2:16)
혹시 오늘 방문하신 분들 중에 카톨릭교회에 다니시는 분 계시면 이해하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카톨릭 교회에서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카톨릭 교리에 의하면 누구든지 구원의 확신을 가진 자는 저주를 받을 자라고 카톨릭 교리는 가르칩니다. 그래서, 심지어 교황도 이 땅에 있는동안에는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믿음과 함께 구원 받을 만한 선행을 한자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그 누구도 감히 하나님께서 만족할만한 선행을 살았다고 자신할 수 있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든 종교들이 자신들의 노력과 수양과 선행으로 의롭게 사는 것을 목적하지만, 그런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여겨질 분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분 중에 나는 특별히 악한 삶을 살지는 않았으니까 천국에 가겠지하는 분이 계시면 소망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보다 훨씬 더 열심히 노력하고 수양을 하고 의롭게 살려고 한 분들도 구원을 확신치 못했습니다. 인간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죄로 인해 그 마음이 만물 중에 가장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렘 17:9) 그러므로, 인간의 의로운 행위도 더러운 걸레 같다고 말합니다. (사 64:6) 인간은 이렇게 자신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구원주가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불교신문에 보니까, 성철스님과 법정스님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법정스님이 성철 스님에게 물어봅니다. “정말 사람이 성불할 수 있습니까?” (불교 용어로 깨달아서 번뇌로부터 벗어나 부처가 되는 것 혹은 해탈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구원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법정스님도 자신이 해탈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성철 스님이 길게 설명하며 성불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성불했다고 답변을 못합니다. 한국의 가장 위대한 법정스님과 성철스님도 자신들이 성불하지 못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입니다. 제가 약 45년 전에 한국의 제주도 한라산에 올라갔다가 그 당시 73세이셨던 고승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17세때 한라산에 들어오셔서 50년 이상을 수행을 하신 것입니다 제가 그 스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해탈하셨냐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직 못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수행하셨음에도 해탈을 못하셨냐고 여쭈어 보니까, 아직도 자기 마음 속에 있는 시커먼 것이 있는 그 것을 끄집어내지 못했다고 말씀합니다. 저는 속으로 이 시커먼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죄가 아닐까 생각했었습니다. 성철스님이 유서를 쓰면서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은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죄 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절규했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줄 구원주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사야 53:5,6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인해 우리대신 형벌 받으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인간을 양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양은 순한 동물로 알려져있습니다. 보통 온순한 사람을 가르켜 양처럼 순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양을 키워본 분들에 의하면 양처럼 고집스러운 동물이 없다고 합니다.
앞에 낭떠러지가 있어도 자기 멋대로 앞으로 가고, 함께 가다가 남의 밭에 갑자기 뛰어들어가 피해를 일으키고, 목자가 잠간 쉬는 사이에 사방으로 흩어져서 목자들의 진땀을 빼게도합니다. 추운 겨울이 되면 일부러 양의 털을 깎는 다고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키 털을 믿고 혼자 있다가 얼어죽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합니다. 철저하게 고집스럽고 자기 중심적인 양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6) 여호와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켰다고 말씀하시는데, 우리 모두의 죄악의 내용이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길로 간 것입니다. 한 길 앞치도 모르면서 목자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자기 뜻대로 다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양같다고 말합니다” 예외가 없다는 말입니다. 겉으로 착해보이던 악해 보이던, 외성적인던 내성적이던 온순하던 공격적이든, 온유하던 난폭하던, 우리는 다 양처럼 그릇 행하여 (길을 잃고) 각기 제 길로 갔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기를 거부하고, 알지 못하면서도 각기 제길로 가는 것이 저와 여러분의 본성이요 또 죄악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각기 자기가 제길로 가면서,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가면, 성실하게 가면 최선을 다해 가면 목적지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산 정상에 계신 분이요 이길로 가던 저길로 가든 이 종교로 가던 저 종교로 가던 그 정상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구원에 이를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저나 여러분이나 그 누구도 그 정상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 14:12)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 정상에 계신 분에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이 정상에 계신 분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이 분이 예수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7-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생은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누구한테 주느냐 “내 양”에게 준다고 말합니다. 영생을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목자로 삼은 양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목자로 삼고 인생의 운전대를 예수님에게 맡긴 분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내가 내인생의 주인노릇하던 분이, 예수님을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삼는 것을 회개라고 말하고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회개하고 믿는 분들에게 영생을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예수를 인생의 주인으로, 인생의 목자로 삼지 않고, 각기 제길로 가는 인생을 사는 분이 있다면, 오늘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구원받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전도를 하다보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겠지만, 인생을 내가 살고싶은대로 즐기다가 죽기 5분전에 회개하고 천국 가겠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운전하다 어떤 스티커를 보았는데 거기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죽기 5분전에 회개하려고 하는 사람은 10분 전에 데려가신다.” 여러분이 돌아가시기 하루 전부터 회개하고 믿겠다고 계획하고 계시다면 이틀 전에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돌아가시기 1년쯤 전에 회개하고 믿겠다고 계획하신다면 2년전에 데려가실 수 있습니다. 가운데 아직도 예수님을 인생의 구원주로 주인으로 모시지 않은 분들은 미루지 마시고 오늘 이시간에 내 인생의 운전대를 예수님에게 드리고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목자로 받아들이시고 구원 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인생의 구원주로 주인으로 이미 과거에 모셔들였지만 실지로의 삶 속에서는 자기 뜻대로 사는 분들, 각기 제길로 가는 분들을 위해서도 한 말씀드립니다.
좀 전에 읽었던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0:27-28) 주님께서 아무에게나 영생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양, 즉 예수님을 목자로 모신 자들에게 준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목자로 모신 양들의 특징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목자되신 예수님은 양을 알며, 내 양은 나를 따른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이미 여러분들 가운데 예수님을 믿는다는 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있습니까? 주님을 따라가고 있습니까? 다른 것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시간을 드리지만, 막상 주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은 아깝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도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며 내가 보기에 좋은대로 자기를 고집하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삶을 살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고 그런 삶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진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상상으로 만든 예수님을 믿는 것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구원 받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께서는 나는 너를 안 적이 없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예수님을 주로 모시고 따른다고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각 각 자기 길을 가려고 하는 양의 본성이 남아있습니다. 양같은 어리석음과 고집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한눈을 팔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따르려면 각 각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한다고 말씀합니다. (눅 9 : 23)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내 자신을 부인해 보십시요. 섭섭한 마음, 미워하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 무시하는 마음 용서치 못하는 마음, 원수를 원수로 갚고저 하는 마음. 악을 악으로 갚고저 하는 마음, 쾌락을 앞세우는 마음,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인정받고저 하는 마음, 내 뜻대로 살고싶은 이런 마음들을 부인해 보십시요. 이 것이 나를 부인하는 것이요 나를 부인하게 되면 불행이 아니라 천국을 경험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경험할 것입니다.
또, 날마다 제십자가를 지고 따라야지만 주님을 따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나는 십자가를 지어야 마땅 할 흉악한 죄인, 예수님의 구원으로만 벗어날 수 있는 철저히 자기 중심의 흉악한 죄인임을 날마다 인정하며 예수님을 따라가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삶을 사게되면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의 삶은 죽은 다음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이미 시작됩니다. 천국이란 영어로 the Kingdom of Heaven입니다. 예수님이 왕으로서 다스리시고 인정되는 곳이 천국입니다. 내 심령 속에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살면 천국을 이루는 삶을 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을 제멋대로 살다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이미 천국의 삶을 살던 사람들이 죽어서 들어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려는 의도가 없다면 천국의 삶이 아니라 세상사람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 뜻대로 산 분들, 오늘부터 각기 내길로 가던 습관을 버리고 자기룰 부인하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는 새로운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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