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일 (월) "예수님의 성전척결" 마태복음 21:12-17 3/26/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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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6일 (월) 마태복음 21:12-17 성전척결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 안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14 성전 뜰에서 눈먼 사람들과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예수께 다가오니,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15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께서 하신 여러 가지 놀라운 일과, 또 성전 뜰에서 "다윗의 자손에게 호산나!" 하고 외치는 아이들을 보고 화가 나서, 16 예수께 말하기를 "아이들이 무어라고 하는지 듣고 있소?" 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주께서는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오게 하셨다' 하신 말씀을, 너희는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17 예수께서 그들을 두고 성 밖으로 나가, 베다니로 가셔서, 거기에서 밤을 지내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가장 첫번째로 하신 일이 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 안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정말 과격하시지요?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분개하셨을까? (물론 예수님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성전에서 일어나는 일이 문제을 심각하게 생각했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들 문제는 로마 점령군이요 메시야가 와서 저들만 빨리 없애 버리면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될 것 처럼 부르짖고 애원했습니다. 그런데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은 로마 사람들을 공격하기 보다는 성전에서 일하던 자들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시급한 문제가 외부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전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된데서부터 문제라는 것입니다.
13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였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내 집”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가 그들 가운데 머물 수 있도록, 그들에게 내가 머물 성소를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출 25:5) 그러니까 성전은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왕궁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란 나라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성전으로부터 하나님의 통치가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고 세상으로 임해야 하는데, 오히려 사람들의 욕심이 세상의 물질주의가 성전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물질주의, 참된 예배가 없는 형식 주의,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주인행세하는 인본주의등이 하나님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고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 것입다." 그래서 이토록 예수님은 분개하신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성도 각자가 성전이요, 그리스도의 교회가 성전이요 하나님의 집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성전인 우리들을 보고 혹시 분개하시지 않으실까요?
저는 지난 4주동안 매주 토요일 Homeless 전도하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놀랜 것은 그 중의 많은 분들이 교회를 다녔던 사람들입니다. 그 들 중에는 제가 외우지 못한 성경구절을 잘 외우는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예수를 믿고 예수를 구세주와 주로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그들도 성전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세상의 빛이 되어 영향을 주기 보다는 세상의 문제거리가 되었습니까? 왜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통치를 드러내기보다는 사탄과 세상의 어두운 세력과 정욕의 노예가 되었습니까?
우리 자신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만약 교회 건물의 문이 부서졌다든지, 하수도 문제나 전기문제가 생겼다면 성도들은 분명 그 상황을 방치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도록 즉각 최선의 조치를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양식 큐티 해설에 의하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 음욕, 탐욕, 물질주의, 분노, 이기심, 교만, 육욕, 이혼, 불경건한 오락, 세속적 철학 등에 대해서는 조금씩 경계를 늦췄고, 그것들을 교회 안으로 맞아들여 안방까지 내주고 말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자신의 마음과 가정에서 거룩하지 못한 더러운 것을 철저하게 제거하려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거룩하지 못한 교회가 흥청망청 즐기다가 죽어 가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무릎 꿇는 성도들은 어디에 있는가?”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경제적인 문제나 몸 건강에 관해서는 지극히 예민하면서도 내 안에 존재하는 물질주의 명예주의 쾌락주의 세속주의등 하나님을 거르시는 것들에 대해서는 무감한 것이 아닌지?, 그 결과로 심한 경우에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술이나 마약이나 도박에 중독되기도 하고 홈리스들 처럼 될 수도 있고, 또 이런 특별한 문제가 없더라도 세상의 빛이 되기 보다는 세상의 일부처럼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지배 하시는가 아니면 다른 강도가 내 생각과 가치관의 주인노릇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겠습니다.
13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였다.
하나님께서 친히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며 또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물론 이 말은 성전에서만 기도할 수 있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다니엘이나 요나처럼 이스라엘백성들은 성전을 향해서 기도했습니다. 왜 성전중심의 기도인가? “성전에서는 피의 제사가 있고 이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것은 마치 오늘날 우리가 모든 기도를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시는 은혜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정말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이라면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만나는 곳;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성전인 우리는 기도하는 자여야합니다. 우리가 영적 전쟁에 승리하려면 “온갖 기도와 간구로 늘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또 이것을 위하여 늘 깨어서 끝까지 참으며,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라.”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엡 6:18) 저는 홈리스형제를 만나 대화할 때 이들이 지금이라도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할 수만 있다면 문제가 해결될텐데란 강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사실은 여러분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기력하든지 어떤 문제에 휩싸여있든지, 기도 가운데 주님의 손을 붙잡을 수 있다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있는 곳에서 기도할 수 있고 적극적으로 기도하는 성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4 성전 뜰에서 눈먼 사람들과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예수께 다가오니,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주님께서 성전뜰에서 병자를 고치십니다. 하나님께서 병자를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집이요 성전인 우리들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생명수처럼 넘쳐 흘러나온다면 영적, 육적, 정신적병으로 시달리는 자들을 온전케 하는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그런 역사가 일어나고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좀더 적극적으로 기도하고 섬기며 치료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성전뜰에서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로부터 "다윗의 자손에게 호산나!"란 찬양을 받으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받으시고 찬양받으시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창세전에 택함을 받고 예정을 받고 부르심을 받고 구원을 받은 자들인 것을 에베소서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찬양이란 꼭 음악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입으로 주님을 자랑하고 높이는 삶을 말합니다. 이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면 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칭송하고 높이고 자랑하는 찬양의 삶을 사시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성전인 우리를 방문하신다면, 우리가 칭찬받는 자들이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 나눈 말씀을 중심으로 세가지 질문을 하고싶습니다. 각 질문마다 1분씩 여러분들 생각하며 주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기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구원을 감사하며 기도가운데 하나님과 늘 교통하는 자가 되도록 1분간 기도하겠습니다.
나의 삶을 통해서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들로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다스림이 생명수처럼 흘러나와 세상사람들을 적시고 있습니까? 주님의 능력과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적으로 사람들을 온전케 회복시키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1분간 기도하겠습니다.
나의 입술로 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까? 노래로 부르는 찬양, 우리의 입으로 주님을 자랑하고 높이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도록 1분간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의 문제점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전인 우리 자신과 교회 안에 벌어지고 있는 일 때문이란 사실을 인정합니다. 주님, 과연 하나님 아닌 강도가 주인행세를 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기도하는 삶을 감당케 하옵소서. 고난 주간 동안, 기도와 찬양과 섬김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 안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14 성전 뜰에서 눈먼 사람들과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예수께 다가오니,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15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께서 하신 여러 가지 놀라운 일과, 또 성전 뜰에서 "다윗의 자손에게 호산나!" 하고 외치는 아이들을 보고 화가 나서, 16 예수께 말하기를 "아이들이 무어라고 하는지 듣고 있소?" 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 '주께서는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오게 하셨다' 하신 말씀을, 너희는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17 예수께서 그들을 두고 성 밖으로 나가, 베다니로 가셔서, 거기에서 밤을 지내셨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가장 첫번째로 하신 일이 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 안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다 내쫓으시고,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정말 과격하시지요?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분개하셨을까? (물론 예수님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성전에서 일어나는 일이 문제을 심각하게 생각했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들 문제는 로마 점령군이요 메시야가 와서 저들만 빨리 없애 버리면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될 것 처럼 부르짖고 애원했습니다. 그런데 메시야로 오신 예수님은 로마 사람들을 공격하기 보다는 성전에서 일하던 자들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장 시급한 문제가 외부세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전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 된데서부터 문제라는 것입니다.
13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였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내 집”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가 그들 가운데 머물 수 있도록, 그들에게 내가 머물 성소를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출 25:5) 그러니까 성전은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왕궁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란 나라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됩니다. 그러니까, 성전으로부터 하나님의 통치가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고 세상으로 임해야 하는데, 오히려 사람들의 욕심이 세상의 물질주의가 성전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물질주의, 참된 예배가 없는 형식 주의,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이 주인행세하는 인본주의등이 하나님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고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린 것입다." 그래서 이토록 예수님은 분개하신 것입니다.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성도 각자가 성전이요, 그리스도의 교회가 성전이요 하나님의 집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성전인 우리들을 보고 혹시 분개하시지 않으실까요?
저는 지난 4주동안 매주 토요일 Homeless 전도하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놀랜 것은 그 중의 많은 분들이 교회를 다녔던 사람들입니다. 그 들 중에는 제가 외우지 못한 성경구절을 잘 외우는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예수를 믿고 예수를 구세주와 주로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그들도 성전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세상의 빛이 되어 영향을 주기 보다는 세상의 문제거리가 되었습니까? 왜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통치를 드러내기보다는 사탄과 세상의 어두운 세력과 정욕의 노예가 되었습니까?
우리 자신은 어떻습니까, 우리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만약 교회 건물의 문이 부서졌다든지, 하수도 문제나 전기문제가 생겼다면 성도들은 분명 그 상황을 방치하지 않고 문제가 해결되도록 즉각 최선의 조치를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양식 큐티 해설에 의하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인 음욕, 탐욕, 물질주의, 분노, 이기심, 교만, 육욕, 이혼, 불경건한 오락, 세속적 철학 등에 대해서는 조금씩 경계를 늦췄고, 그것들을 교회 안으로 맞아들여 안방까지 내주고 말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자신의 마음과 가정에서 거룩하지 못한 더러운 것을 철저하게 제거하려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거룩하지 못한 교회가 흥청망청 즐기다가 죽어 가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무릎 꿇는 성도들은 어디에 있는가?”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경제적인 문제나 몸 건강에 관해서는 지극히 예민하면서도 내 안에 존재하는 물질주의 명예주의 쾌락주의 세속주의등 하나님을 거르시는 것들에 대해서는 무감한 것이 아닌지?, 그 결과로 심한 경우에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술이나 마약이나 도박에 중독되기도 하고 홈리스들 처럼 될 수도 있고, 또 이런 특별한 문제가 없더라도 세상의 빛이 되기 보다는 세상의 일부처럼 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지배 하시는가 아니면 다른 강도가 내 생각과 가치관의 주인노릇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겠습니다.
13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였다.
하나님께서 친히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며 또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물론 이 말은 성전에서만 기도할 수 있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다니엘이나 요나처럼 이스라엘백성들은 성전을 향해서 기도했습니다. 왜 성전중심의 기도인가? “성전에서는 피의 제사가 있고 이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것은 마치 오늘날 우리가 모든 기도를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시는 은혜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정말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이라면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만나는 곳;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성전인 우리는 기도하는 자여야합니다. 우리가 영적 전쟁에 승리하려면 “온갖 기도와 간구로 늘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또 이것을 위하여 늘 깨어서 끝까지 참으며, 모든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라.”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엡 6:18) 저는 홈리스형제를 만나 대화할 때 이들이 지금이라도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할 수만 있다면 문제가 해결될텐데란 강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사실은 여러분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기력하든지 어떤 문제에 휩싸여있든지, 기도 가운데 주님의 손을 붙잡을 수 있다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있는 곳에서 기도할 수 있고 적극적으로 기도하는 성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4 성전 뜰에서 눈먼 사람들과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예수께 다가오니,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
주님께서 성전뜰에서 병자를 고치십니다. 하나님께서 병자를 치료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집이요 성전인 우리들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생명수처럼 넘쳐 흘러나온다면 영적, 육적, 정신적병으로 시달리는 자들을 온전케 하는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부분적으로 그런 역사가 일어나고 있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좀더 적극적으로 기도하고 섬기며 치료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성전뜰에서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로부터 "다윗의 자손에게 호산나!"란 찬양을 받으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받으시고 찬양받으시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창세전에 택함을 받고 예정을 받고 부르심을 받고 구원을 받은 자들인 것을 에베소서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찬양이란 꼭 음악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입으로 주님을 자랑하고 높이는 삶을 말합니다. 이 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면 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칭송하고 높이고 자랑하는 찬양의 삶을 사시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성전인 우리를 방문하신다면, 우리가 칭찬받는 자들이 되기를 바라면서 오늘 나눈 말씀을 중심으로 세가지 질문을 하고싶습니다. 각 질문마다 1분씩 여러분들 생각하며 주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기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구원을 감사하며 기도가운데 하나님과 늘 교통하는 자가 되도록 1분간 기도하겠습니다.
나의 삶을 통해서 치료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들로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다스림이 생명수처럼 흘러나와 세상사람들을 적시고 있습니까? 주님의 능력과 주님의 사랑으로 충만하여,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적으로 사람들을 온전케 회복시키는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1분간 기도하겠습니다.
나의 입술로 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까? 노래로 부르는 찬양, 우리의 입으로 주님을 자랑하고 높이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도록 1분간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의 문제점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전인 우리 자신과 교회 안에 벌어지고 있는 일 때문이란 사실을 인정합니다. 주님, 과연 하나님 아닌 강도가 주인행세를 하고 있지 않은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기도하는 삶을 감당케 하옵소서. 고난 주간 동안, 기도와 찬양과 섬김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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