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에서 사랑으로… 고린도전서 8:1-3; 로마서 14:1 4/22/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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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상에게 바친 고기에 관하여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지식이 있는 줄로 압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세워줍니다.
2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이미 아신 바 된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알아 주십니다.)
1절에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지식과 사랑을 반대되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 그랬으니까 사랑은 겸손하게 한다란 의미가 될 것입니다. 또 사랑은 세운다고 말합니다 (love builds up) 그렇다면 사랑은 세워주지만 지식은 그 반대니까 무너뜨린다는 말입니다. 지식은 관계성을 세워주기보다는 무너뜨린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선과 악을 알게되는 지식이 오히려 아담과 이브 사이를 갈랐던 것처럼, 내가 갖고 있는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이, 내가 아는 성경지식이, 정치 지식이나,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 관계를 세워주고 가정을 세워주고 교회를 세워주기 보다는 오히려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절 2절에 보면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지식때문에 교만한 사람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식때문에 교만한 사람들을 무엇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상상하는 ESV) 사람으로 표현합니다. 왜냐하면 마땅히 알아야할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신학교를 나왔으니까, 내가 목사니까, 내가 경험과 경력이 있으니까, 나는 공부를 했으니까 나는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교만한 것이요 마땅히 알아야할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교회가 이런 사람으로 가득차 있을 때 문제가 많습니다. 이미 아니까, 들어봤자 뻔하니까 목사의 설교도 안들어오고, 목사도 성도의 말을 들을 줄 모르고, 서로 서로 들을 것도 없고 배울 것도 배울 필요도 못 느낍니다. 그리고 이미 안다고 생각하니까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수용하지 못합니다.
지금 한국사회가 그런것 같습니다.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충만하기 때문에 자기와 다른 의견을 들을려고도 하지 않고 들어도 수용못합니다. 우파와 자파, 진보파와 보수파 서로를 대화가능한 대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대화를 하려면 상대방의 견해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배우려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이미 아니까 상대방의 의견을 듣기보다는 설득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대화가 지속될 수 없습니다. 실지로 한국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식당에서 정치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는데 결국 집에 돌아 가다가 아버지가 중간에서 차를 멈추고 아들에게 내리라고하고 버리고 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정치논쟁으로 교회가 깨졌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비단 정치적인 문제만이 아닙니다. LA에서 목회를 하시던 어떤 목사님이 교인들 중에 유학생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들 중에 아주 신실한 남학생과 여학생이 서로 사귀게 되어 약혼까지 하고 결혼하기 위해서 한국에 나갔다고 합니다. 두 남녀가 너무 귀하고 신실해서 개인적으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돌보았고 이들이 한국에 나갈 때도 결혼이 잘 성사되도록 축복하여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 나가서 결국 그 관계가 깨지고 결혼을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결혼식을 앞두고 양가의 부모님들이 혼수문제 때문에 서로 다투다가 결국 깨어지게 된 것입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양가의 부모님들이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으셨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로 알려진 분들이란 사실입니다. 혼수에 대한 그들의 지식때문에,예절에 대한 그들의 상식때문에 교만해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사랑보다는 자신의 상식을 앞세웠고 그 결과로 그 두 귀한 젊은 영혼의 관계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젊은 한 쌍은 결혼식을 끝내고 이미 신혼여행을 갔다 온 후에 리셉션에서 결혼이 무산되었습니다. 결혼식을 신부측에서 혼자 다 준비하느라 지친 상태에 있는 며느리를 시어머니가 리셉션에서 너무 훈계하니까 보다 못한 신부 아버지가 말렸다가 결혼이 무산된 것입니다. 그 후에 신부의 부모는 신랑측 부모님들에게 계속 연락을 시도하면서 자식들의 재결합을 원했고 나중에는 자녀들의 문제를 떠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더욱 목사들로서 서로 화해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했지만 결국 거부당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화해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던 그 와중에 너무 힘들어 했던 신부측 부모님, 그리고 그 딸을 생각할 때에 지금도 마음이 아픔을 느낍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 입니다. 만약 저나 여러분이 우리 자신의 상식이나 지식이나 논리를 앞 세워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볼 필요도 없고, 배울 것도 없고, 용서할 수 없고 대화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면, 마땅히 알아야할 것을 모르고 있다고 꼭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생각이 안들더라도, 믿어지지 않더라도 마땅히 알아야할 것을 모르고 있다고 그렇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또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만약 우리를 그 분의 지식대로 상식으로 우리를 다루셨다면 우리는 다 심판 받고 지옥에 갈 존재들이란 것을 항상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자기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마땅히 알아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초신자들 보다는 교역자들이나 좀 믿음이 있고, 뭔가를 안다는 분들때문에 생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교만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내가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말합니다. 많은 지식이 있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마땅히 알아야할 것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내가 아무리 유창한 설교를 하고 감탄할만큼 말을 잘 한다 다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사랑은 세워주고 회복시켜 주지만 사랑이 없는 지식은 무너뜨리고 파괴하기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은 “그러나”라는 반대접속사로 시작됩니다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반대의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알아 주십니다.” (갑자기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왜 지식이 있다고 교만한 사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 반대되는 것인가? 여러분들 생각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말합니까?
최고의 열심과 헌신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이 사람이 “눈에 보이는 사람을 사랑치 않는 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다.:라고 성경은 단언합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요일 4:20-21) 예수님께서도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지식과 논리와 상식을 앞세워서 형제를 용서치 못하고, 화해키를 거부하고, 사랑치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사랑치 않는 자입니다.
반면 형제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께 이미 아신바 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한글 성경 번역처럼 “하나님께서 그를 알아 주십니다”라고 되어 있어서 마치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여 형제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알게 된다란 뜻으로 오해하기 쉬운데 그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하나님께 아신바된 자들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수동형 과거 ἔγνωσται) 하나님이 예정하셔서 우리를 미리 아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게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왜 이 사실이 중요한가?)
다른 종교인들도 그들의 신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중요시 여깁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자기에게서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기 때문에 헌신하기 때문에 자랑할 건덕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시고 예정한 바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내게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도 그 것으로 인해 교만해질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자들이 사랑으로 세우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이 가정을 세우고 교회를 세우고 관계를 세우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나와 의견이 다른 형제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을 보시면 우상에게 바친 고기에 관한 말로 시작됩니다. 당시 고린도 시장에서 팔던 대부분의 고기는 우상에게 제사드려졌던 고기였습니다. 그래서 지금 고린도 교회에는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을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의견의 차이로 분열이 있었습니다.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고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도 결국 하나님의 것이므로 먹을 수 있다고 올바른 지식을 가진 분들과, 반면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는 우상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믿음이 약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똑같은 문제가 로마교회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권고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롬 14:1) 믿음이 약하여 “우상에게 바쳐졌던 고기를 우상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형제를 받으라고 말합니다
왜 받으라고 말씀하는가? 보통 우리에게 겸손함과 사랑이 없으면 서로 의견이 다를 때 다투기 쉽고 인신공격으로까지 바뀌기 쉽습니다. 그래서 제 3자가 볼 때는 별 것 아닌 문제로 다투다가 관계가 깨집니다 피아노를 강당 위에 두느냐 밑에 두느냐란 문제로 교회가 깨진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어떤 목사님이 목사되기 전에 섬기던 교회가 볼링게임하다가 갈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의견이 서로 다를 때 우리는 겸손함과 사랑으로 먼저 상대방을 받아야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대화와 교제가 가능합니다.
주님은 우리 자신보다 우리에 대해서 잘 아시고 우리 각자의 의견도 우리 자신보다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흠과 약점을 아심에도 저도 받으셨고 여러분도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 서로 받아야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로마서 15:7)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시몬이란 자가 있었고 마태란 자가 있었습니다 시몬은 열심파로서 이스라엘의 정치적 독립을 추구하며 로마군인을 죽이기 위해서 항상 칼을 품고 다니던 자였습니다 세리는 백성들에게 세금을 거두어 로마정부에 바치는 자였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일정시대 때 독립군과 일본앞잡이 같은 철저한 원수지간 이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 간에 주님 안에서 사랑이 가능하고 주님 안에서 하나됨이 가능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받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원수지간인 유대인과 이방인간의 장벽을 그리스도의 피로 허무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토록 주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서로 받아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자신의 의견과 동의하는 사람을 받아주는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받아줌은 조건적인 것이요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서로 받아주는 것은 모든 조건과 모든 의견을 초월합니다 유일한 조건이 있다면 예수님의 제자란 조건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된 자들은 서로 서로를 받아주어야 합니다
롬 14:1절을 다시 봅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
믿음이 연약한 자를, 나와 의견이 다른 자를 받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또 한가지는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받았으면 상대방의 의견을 동의치 않더라도 비판하지 말고 존중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분명 우상숭배의 습관때문에 채소만 먹는 사람은 잘못된 생각임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주장하거나 강요하거나 가리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아직 믿음이 약해 음식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더 중요시 여겼습니다. 그래서 모든 음식을 먹을 자유가 있지만 형제자매 중에 한 사람이라도 걸려서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까지 결단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15: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돌보아주고)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build up) 내가 보기에 틀린 의견을 가진 자라도 그의 약점을 돌보아 주고 자신을 기쁘게 하지 말고 그를 기쁘게 해주라고 당부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관계를 세우고 교회를 세운다고 말합니다
우리들도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각각 다른 배경과 관점과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의 견해를 무시하거나 비판하거나 정죄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의 의견이 아무리 옳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의견은 누군가를 정죄하는 데 사용될 것이며 관계를 세우기 보다는 무너뜨리는데 사용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 과거 거의 20년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제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가 뭘 안다고 생각하며, 믿음이 약한 자를 돌보아주고 그들의 약점을 담당하므로 그들을 기쁘게 하기 보다는,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므로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심지어 교회를 떠나게까지 한 과오가 없었는지 돌아봅니다
반면 우리가 지난 10년 혹은 20년이 되도록 함께 남아 있는 분들은, 그 동안 분명 의견의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의견보다 그리고 내 권리보다 내 기쁨을 추구하는 것보다도 형제와의 관계를 더 중요시 여겼기 때문인 줄압니다. 성경에 분명히 언급된 절대적인 진리는 타협할 수 없지만,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들에 있어서는 서로의 의견이 다르더라도 서로를 받아들이며 서로의 의견을 비난하는 대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서로의 의견을 통해 배우고 이해하고 포용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결론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데 가장 방해되는 것이 우리들의 지식일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내가 가진 지식이 관계를 세우기 보다는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도 배웠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지식보다, 우리들의 의견과 견해보다는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꼭 믿고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지식이나 의견보다 사랑을 앞세우므로 서로를 세워주고 교회를 세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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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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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에서 사랑으로.. (고린도전서 8:1-3; 로마서 14:1)
“우상에게 바친 고기에 관하여 말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지식이 있는 줄로 압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세워줍니다.
2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이미 아신바 된자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마십시요” (롬 14:1)
1. 고전 8:1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지식 (교만) vs 사랑 (세워줌)
지식 ➔ 교만 ➔ 무너뜨림
사랑 ➔ 겸손 ➔ 세워줌
2. 고전 8:2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지식) ➔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 (교만) ➔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모름 ➔ (무너뜨림)
3. 고전 8:3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알아 주십니다”
(사랑) ➔ 하나님을 사랑 (겸손) ➔ 하나님의 아신바 됨 ➔ (세움)
“보이는 자기의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21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요일 4:20-21)
요 14:15, 21,23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4. 롬 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마십시요”
A. 너희가 받되
B.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마십시요. (롬 14:3,10,13; 15:1-2)
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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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에서 사랑으로.. (고린도전서 8:1-3; 로마서 14:1)
1. 고전 8:1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 성경은 지식과 사랑이 서로 상반되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교만하게 하니까 사랑은 겸손하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은 관계성을 세워주니까, 교만은 관계성을 무너뜨린다는 말씀입니다.
2. 고전 8:2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그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말합니다. 많은 지식이 있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3. 고전 8:3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를 이미 아신바 된 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보이는 자기의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요일 4:20-21)
하나님께서 그를 아미 아신바 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꼐서 우리를 이미 아시고 예정하셨므로 하나님에게서 싲가되었다는 뜻입니다. (한글 성경들의 번역은 “하나님께서 그를 알아주신다”란 의미로 되어 있으나 원문은 “하나님꼐서 이미 아신 바되었다는 뜻입니다)
4. 롬 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마십시요”
“너희가 받되” 주님은 우리 자신보다 우리의 흠과 약점을 더 잘 아심에도 우리를 받으셨으므로 우리도 서로 서로 받아야한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롬 15:7) 그러므로 의견이 서로 다를 때 우리는 겸손함과 사랑으로 먼저 상대방을 받아야 교제가 가능합니다.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마십시요.” 우리가 서로를 받았으면 상대방의 의견을 동의치 않더라도 비판하지 말고 존중해 주라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