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기도 빌립보서 1:9-11 7/10/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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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분별력 속에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so that)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순결하여 흠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지난 주 골로새서 4장을 본문으로 큐티를 하였는데 4장 2절에 보면 바울이 골로새 성도들에게 “기도에 힘을 쓰라”라고 권고합니다. 기도에 힘을 쓰라란 말이 여러 영어성경에는 기도에 헌신하라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여기 힘을 쓰라라는 말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교회내 구제하는 문제로 인해 7집사를 임명하면서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 사역에 헌신하겠다란 말고 같은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기도에 전념하는 것은 단지 사도들 뿐 아니라 오늘날로 말하면 교역자들뿐 아니라 모든 성도의 의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바울은 이런 헌신된 기도의 본을 보여준 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각 교회들에게 편지하면서 레슬링 하듯 있는 힘을 다하여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한다고 고백합니다 (바울 2:1) 쉬지 않고 기도한다고 고백합니다, 끊임없이 기도한다고 고백합니다, 또 밤낮으로 기도한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다룰 빌립보 교회를 위해서도 기쁨으로 항상 간구한다고 고백합니다. (1:4)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인데 왜 그냥 하나님에게 기도 하면 됐지, 각 교회 성도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한다는 것을 이렇게 꼭 알려야 하는가? 저도 제가 평소에 위해서 기도하는 분을 만나면 보통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해줍니다. 그들을 사랑한다는 고백으로 그리고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바울도 역시 그런 심정으로 각 교회를 위해 기도한다는 사실을 밝혀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단지 그들을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기도한다는 사실만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무엇을 기도하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기도하는지도 자세하게 알려줍니다. 그래서 편지를 받는 성도들이 어떻게 변화되기를 원하며 또 어떻게 그들 스스로도 기도해야할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울의 빌립보 성도들을 위한 기도를 살펴보므로, 이 기도가 우리 각자의 기도가 되고 (또 다른 성도들을 위한 기도가 되고) 또 각자의 삶 속에서 이 기도의 목적을 실천하는 축복이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먼저 본문 9절을 읽겠습니다.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분별력 속에서 (과 함께)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빌립보 성도들의 사랑이 점 점 더 풍성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를 위해 기도할 때도 그들이 사랑으로 결속 (연합)되도록 간구하였습니다. (골 2:2) 또,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는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도록” 간구합니다. (엡 3:17) 또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서는 “저들이 서로 나누는 사랑과,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사랑이 풍성하게 하고, 넘치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살전 3:12) 이렇게 바울은 각 교회에게 편지를 쓸 때 그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명령하거나, 또 그들이 서로 사랑하도록 그들을 위해 간구하는 것을 밝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서도 사랑이 점 점 더 풍성하도록 기도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 가운데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미 사랑이 있지만 더욱 풍성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1000 마일이나 떨어진 감옥에 갇힌 바울을 기억하고 도왔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환난의 많은 시련과 극한 가난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하였던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마땅히 저들이 겪고 있는 시련과 극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할텐데, 바울은 전혀 그들이 겪고 있는 시련과 극한 가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오직 그들의 사랑이 더욱 더 풍성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만약 바울이 오늘날도 살아 있어서 우리에게 편지를 보낸다면 다른 무엇보다 우리가 사랑으로 더욱 풍성해지도록 권고할 것입니다. 또, 우리교회를 위해 기도한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사랑으로 풍성해 지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사랑으로 풍성하다는 것은 영어성경에는 abound or overflow로 표현합니다. “사랑으로 넘쳐 흐르는 것을 말합니다" 바가지로 가득한 물을 조그만 컵에 다 부어버리면 물이 넘쳐흐르는 것과 같습니다. 엄청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부어질 때 사랑이 넘쳐 흐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심정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랑을 갖도록 지금 바울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넘치되 지식과 분별력 속에서 점점 더 흘러 넘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지식과 분별력은 분리될 수 없는 것임을 밝힙니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 아들이 중학교에 다닐 때에도 감기가 들어 콧물을 흘리면 종이로 코를 닦아주지 않고 아버지의 입으로 코를 빨아내었다고 합니다. 아들은 자라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녔고, 졸업 후에도 아버지가 논과 밭을 팔아 보내주는 돈으로 허랑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런 줄도 모르는 아버지는 아들이 좋은 곳에 취직하기만을 바라면서 땅을 팔아 아들이 요구하는 대로 꼬박꼬박 돈을 보내주었습니다. 이제 아버지가 더이상 팔 땅도 없고 생활이 어려워지자 서울에 있는 아들을 찾아 왔습니다. 그런데 친구들과 함께 있던 아들은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며 시골에 있는 머슴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시골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지식과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이 빗나간 사랑이 된 것입니다. 실지로 어머니나 아버지의 지극한 사랑때문에 오히려 부모님들 자신도 자식들도 인생을 망친 자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영적으로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에 비해 하나님에 대한 헌신된 열정과 사랑이 있는 민족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지식도 분별력도 없었기 때문에 그 열정으로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 후에도 유대인들은 나름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지식이 없어서 하나님의 의보다는 자기 의를 앞세운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바울도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까지 하나님에 대한 남다른 사랑의 열정은 있었지만, 지식과 분별력이 없었기때문에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일에 앞장 섰었습니다.
“너희 사랑이 지식과 분별력 속에서 더욱 풍성해 져서.” 어떤 지식과 분별력을 말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도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므로, 자신이 과거에 가장 귀중히 여기던 것들을 배설물저럼 여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를 알게되니까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치 않은 것인지 분별력이 생기는 것깁니다.
지난 주간 동안에 미국 사회에 잘 알려진 유명인 두 사람이 자살했습니다. 그중 Kate Spade란 여인은 지난 화요일에 자살을 했는데, 그녀는 핸드백 fashion designer로서 1993년 핸드백 회사를 차렸는데 그 회사가 2017년도에는 24억불에 팔릴 정도로 굉장히 크고 유명한 회사입니다. 이 회사의 이름은 자기 이름을 따서 (KS - happy-go-lucky Kate Spade) “행복하고 낙천적인 케이트 스페이드” 라고지었습니다. 이 여인이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여러번 있었는데, 이 여인의 동생에 의하면 만약 자기가 정신병으로 치료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기이름을 딴 핸드백회사의 이미지가 실추될 것을 염려하여 치료를 거부했고 결국 자살을 하게된 것입니다. 그만큼 이 여인에게는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중요한 것이었고 자신에 대한 이미지 때문에 죽게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목요일과 금요일 사이에 자살한 앤터니 보울대인 Anthony Bourdain은 , 유명한 작가요 여행해설가요, 세계 전역의 음식을 소개하는 방송인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라디오 티비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가장 강력하고 눈을 뜨게하고 새롭게 느껴지는이야기를 만들어낸 작가에게 수여하는 피바디상을 2013, 2016년에도 이미 받았고 이번 해에도 또 그 상을 받기 위해 프랑스에 들른 중에 자살을 한 것입니다. 그가 자살하기 바로 전 그 상을 받는 자리에서 그가 세계전역을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묻는 세가지 간단한 질문을 소개했다고합니다.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가? 무엇을 먹는가? 무엇을 쿡킹하는가? 그는 분명히 어떻게 행복할 수있는가에 대해서는 저와 여러분보다 훨씬 많은 지식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Kate Spade와 마찬가치로 진짜로 필요한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그리스도를 모르므로 참된 분별력도 가질 수 없었건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레슬링을 하듯 있는 힘을 다해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 간구할 때 무엇을 위해 간구했는지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해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추어져 있음을 바울은 알았기 때문입니다.(골 2:1-3) 풍성한 사랑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지식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아감에 따라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되고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분별력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넘쳐 흐르려면 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그리고 분별력으로 충만해야겠습니다.
9절과 10절을 읽습니다.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분별력 속에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기도의 내용을 말합니다) 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순결하고 흠이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기도의 목적을 말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이 사랑이 지식과 모든 분별력 속에서 점점 더 풍성하기를 간구하는 이유는 지극히 선한 것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 새번역) 혹은 무엇이 진짜로 중요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냥 선한 것을 분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선한 것, good 이나 better가 아니라 best 가장 좋고 중요한 것을 분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단지 악한 것과 선한 것을 분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선한 것, 가장 좋고 중요한 것을 분별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론적으로는 지극히 선한 것, 가장 좋고 중요한 것을 잘 압니다. 그리스도가 가장 중요합니다. 복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구원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막상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면 선한 것을 하느라, 중요한 것을 하느라 지극히 선한 것을, 진짜로 중요한 것을 포기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모임에 참석하고 교회사역에 참여하는 것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주님과의 개인적인 시간을 무시할 수있습니다. 집안의 중요한 일들을 하느라, 진짜 중요한 가족이 함께 기도할 시간도 말씀 볼 시간도 갖지 못하기 쉽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복음은 증거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티화나에서 사역할 때 보면 수 많은 교회와 선교기관에서 와서 집을 지어줍니다. 제가 아는 한 그룹만 약 1000채의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증거와는 전혀 상관 없이 집만 지어주고갑니다. 선한 일, 중요한 일을 하느라 지극히 진짜로 중요한 일을 하지는 못한 것입니다.
또, 우리는 본성적으로 당장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끼는 것에 우선적으로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배고프면 우선 먹어야합니다. 피곤하면 우선 쉬어야합니다. 듣고 싶으면 듣고 보고싶으면 보아야합니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살다 보면 정말 무엇이 지극히 선한 일인지, 무엇이 진짜 중요한 일인지 생각조차 할 시간도 없고 생각할 필요도 못느끼면서 세월을 보내기 쉽습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진짜로 중요한 일들 지극히 선한 것을 아예 생각조차 안하게되고 그 결과로 가정에서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과 예배가 없어집니다. 복음증거는 꿈도 못꾸고, 성도간에 교제할 시간도 별로 갖지 못합니다. 주일날 교회모임에 참여한다는 것 외에는 믿지 않는 가정과 별 다를 바가 없어집니다. 그렇게 인생을 살다가 뒤돌아 보면 특별히 나쁜 일 안하고 바쁘게 열심히 살았는데 불구하고 정말 중요한 일을 못하고 세월이 지나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가 지극히 선한 삶, 최선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충만하며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분별력으로 충만하여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지극히 선한 삶, 정말 중요한 것을 추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0절 후반부에 보니까 우리가 사랑으로 충만하며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분별력으로 충만할 때 갖게되는 또 하나의 결과를 말씀합니다.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순결하고 흠이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0 b)
순결하고 흠이 없다는 것이 무엇인가? 다음 장인 빌립보서 2:14-15 절에 그 답이 나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이나 시비를 하지 말고 하십시오. 15 그리하여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 간에 불평이나 시비가 없는 상태를 흠이 없고 순결하다라고 표현합니다. 왜 모든 일에 불평과 시비 없이 하는 것이 이토록 중요한가?
상대방의 문제점이 드러날 때 우리가 불평과 시비를 한다면 자기를 남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이요 그리스도의 마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순결치 못하고 흠이 있는 마음입니다. “불평이나 시비를 하지 말라"라고 말씀하기 전에 (빌립보서 2장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은 그리스도가 바로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 것처럼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라고 권고합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마음이 순결하고 흠이 없는 마음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라고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4:8) 이런 사랑이 상대방의 죄를 덮어주 마음순결하고 흠 없는 삶입니다.
이제 11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11절은 원래 독립된 절이 아니고 전 절의 순결하고 흠이 없는 삶을 설명하는 구절로서, 순결하고 흠이 없는 삶을 의의 열매로 가득한 삶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는데, 이제 의롭다 여김을 받을 뿐 아니라 실지로 의롭게 사는 삶을 말합니다. 주님을 닮는 삶을 말합니다. 의의 열매를 맺는 삶은 우리의 열심으로 수양을 통해서 의를 이루는 율법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의 열매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행하시는 일입니다.
포도나무의 가직같은 우리는 스스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고,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을 때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니까 의의 열매를 맺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할 일은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의의 열매란 사랑의 열매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게 부어질 때 나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쳐 흐르고 의의 열매를 맺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것이 예배자의 삶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분별력 속에서 사랑으로 넘쳐 흐르므로 정말 중요한 것을 분별하며 순결하며 의의 열매로 가득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는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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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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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 교회를 위한 기도” (빌립보서 1:9-11)
1.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분별력 속에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V. 9
빌립보 성도들의 사랑이 점 점 더 풍성하도록 기도하고있습니다. 사랑 으로 풍성하다는 것은 영어성경에는 abound or overflow로 표현합니다 엄청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부어질 때 사랑이 넘쳐 흐르게 되는 것 입니다. 이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심정을 가지고 서로 사랑한다는 뜻입니 다. 그런데, 이 사랑이 넘치되 지식과 분별력 속에서 점점 더 흘러 넘치기 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지식은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 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므로, 자신이 가장 귀중히 여기던 것들을 배설물저럼 여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 를 알게되면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치 않은 것인지 분별력이 생깁니다.
2.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순결하고 흠이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v. 10
사랑이 지식과 모든 분별력 속에서 점점 더 풍성하기를 간구하는 이유는 지극히 선한 것 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단지 악한 것과 선한 것을 분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간구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론적으로는 지극히 선한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생각없이 살다 보면 정말 무엇이 지극히 선한 일인지 생각조차 할 시간도 없고 생각할 필요도 못느끼면서 살기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지극히 선한 삶, 최선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충만하며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분별력으로 충만할 때 갖게되는 또 하나의 결과는 순결하고 흠이 없는 삶입니다. 순결하고 흠이 없는 삶의 예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이나 시비를 하지 말고 하십시오. 15 그리하여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빌 2:14-15) 그리스도가 바로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한 것처럼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이 순결하고 흠이 없는 마음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V. 11
11절은 독립된 절이 아니고 전 절의 순결하고 흠이 없는 삶을 설명하는 구절로서, 순결하고 흠이 없는 삶을 의의 열매로 가득한 삶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롭다 여김을 받을 뿐 아니라, 실지로 의롭게 사는 삶을 말합니다. 의의 열매를 맺는 삶은 우리의 열심으로 수양을 통해서 의를 이루는 율법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의 열매입니다. 포도나무의 가지같은 우리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과 연합히야 그리스도의 사랑이 내게 부어질 때 나를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이 넘쳐 흐르고 의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이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것이 예배자로서의 삶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분별력 속에서 사랑으로 넘쳐 흐르므로 정말 중요한 것을 분별하며 순결하며 의의 열매로 가득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되는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