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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것이 유익이라” 빌립보서 1:20-23. 7/8/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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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것이 유익이라”  빌립보서 1:20-23.  7/8/18

20. 내가 간절히 기대하며 바라는 것은, 내가 어떤 일에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과 같이 지금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나의 몸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21. (왜냐하면)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22. 그러나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보람된 일이라면, 내가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3.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힌 채 재판을 기다리는 상황에서 이 편지를 썼습니다.  그는 재판결과에 따라 죽을 수도 있고 아니면 계속 살수도 있는,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서 이 빌립보서를 쓴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에 대해 염려 하며 걱정하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자신이 삶을 어떻게 생각하고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았습니다.  그리고 자신 뿐 아니라  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삶과 죽음에 대한 자세를 가져야할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절에 보니까.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소원한다고 고백합니다  사느냐 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이름이 높임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세를 갖고 있다보니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없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자로서 죽는 것도 유익하다라고 고백합니다.  좀 더 정확한 번역은 죽는 것도 유익이 아니라 죽는 것은 유익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사는 것도 유익이지만 죽는 것도 유익하다가 아니라기 죽는 것이 유익하다.  그래서 NLT 성경은 “사는 것은 주를 위해 사는 것이지만 죽는 것은 더욱 좋다”라고 번역했습니다.  (For to me, living means living for Christ, and dying is even better. )
오히려 바울은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낫다고 고백합니다 그냥 나은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낫다고 고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의  가능성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당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죽음을 유익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낫다란 고백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바울처럼 죽음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가진 자로서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서울 구치소의 경비교도 대대장으로 근무하셨던 박효진 장로님의 말에 의하면 언제 죽을지 모를 사형수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너, 죽을 준비되었냐?”란 말이라고 합니다  죽음이란 단어는 사형수에게 독약 이상의 무서운 말이라고합니다.

그리고 실지로 사형수들이 수갑에 차여 사형장으로 끌려 갈 때 보폭이 5cm도 될까 말까 하게 발걸음을 뗀다고합니다. 어떤 자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걷다가 은근히 자기 신발을 벗어버리는 사람도 있다고합니디.  그만큼  한발자욱이라도 벌며 1분, 1초라도 좀 더 살기 원하는 생명에 대한 처절한 애착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죽음을 앞두고 1초라도 1분이라도 더 살려는 애착을 가지는가?  왜 이렇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가?

칼융이란 유명한 심리학자는 죽음은 정말 무섭도록 잔인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 척 해 봐야 소용없다 죽음은 물리적 사건으로써만 잔인한 게 아니라 심리적으로는 훨씬 더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기독교인이 아닌 이 심리학자가 그 이유를  “더는 관계의 희망이 조금도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모든 관계를 잃게되는 것이 절망인 것입니다.

실지로, 사형수들이 사형을 받기 위해 끌려 나가면서 어떤 사람은 '어머니, 어머니' 그렇게 목놓아 울며 어머니를 찾는 사람도 있고. 창틀 사이에 조그만 들풀이 피어 있어도 그곳에 코를 대고 폐부가 찢어 지도록 풀냄새를 맡는 이도 있고,  창문틈 사이로 하늘을 쳐다보고 땅 한 번 바라보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또 모든 세상의 사물과의 관계도 끊어지는 것입니다.  어머님의 사랑은 물론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인데 이런 것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되는 것이 절망이요 두려움 인것입니다.


한국이나 미국에 말기 환자들과 가족을 돌보는 하스피스 사역이 있습니다.  최화숙이란 보건학 박사며 이 하스피스 사역의 전문가가 있습니다. 이분이 원래는 일반 간호원이었다가 말기 환자들과 가족들을 돌보는데 관심을 가지게된 동기가 있습니다

이분이 이화여대부속 동대문병원에서 일하셨는데, 하루는 야간 근무 중에 병실을 돌면서 환자들이 잘 자고 있는지를 살피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자기를 붙잡길래 놀라서 돌아보니 폐렴으로 심한 호흡곤란을 겪고 있는 젊은 남자 환자가 숨을 헐떡이면서 떠듬떠듬 하는 말이『선생님, 죽은 다음에 천국이 있습니까?』라고 물어 보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간절히 알고자 하는 열망의 눈을 읽을 수 있었기에 순간 몹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환자에게는 숨쉬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영적(靈的)인 요구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합니다.  그래서 최회숙씨는 이 방면에 연구도 하고 결국 말기 환자를 돌보는 사역에 뛰어들게 된 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말기 암환자들은  대개는 어떻게하면 통증을 견딜 수 있을까를 걱정한다고합니다 그런데 호스피스 서비스를 통해 통증을 비롯한 증상들이 조절되고 나면, 점차 먹지 못하고 기력이 쇠해지는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 많은 질문들을 하게 된다고합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죽음은 어떻게 오나?」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죽은 후에는 정말 來世가 있는가?」「차가운 땅 속에 묻혀서 숨도 못 쉬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神은 정말로 있는가?」그리고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말하고 싶어하고 알고 싶어한다고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죽음의 문제와 죽음 후의 세상의 문제가 중요한 문제를 별로 생각치 않으면서 살지만,  그러나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사형수던 말기환자던 죽음과 그 이후에 내세가 그토록 중요한 문제요 공포 스럽기까지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최화숙 박사가 이 선생님이라는 분의 예를 듭니다.  이 분은 3개의 회사를 경영해 온 60세의 남자로 간암말기(肝癌末期) 진단을 받고. 친구가 의사로 있는 S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입원하였습니다.  친구 의사는 이선생이란 분이 평소 사리분별이 정확했고 또 경영하던 회사도 정리하여야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어 본인에게 현재의 건강상태를 설명해주고 교과서에 써 있는 바 대로라면 앞으로 약3개월 정도 더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런데 3개월 정도 살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 환자의 상태가 이상해지더니 온몸이 굳어서 움직이지를 못하고 말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친구 의사는 혹시 환자가 자신의 말에 충격을 받은 것인가 생각하여 정신과 의사에게 의뢰하였는데도 별 효과가 없어서 마지막으로 호스피스에 의뢰한 것입니다

빨리 좀 와 달라는 전화를 받고 병실에 올라가 보니 정말 환자는 침대에 똑바로 누워 무릎을 약간 세운 채 이빨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두 눈을 크게 뜨고 무언가 무서운 것이라도 보고 있는 듯 공포에 질린 얼굴 표정으로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환자에게 다가가 얼굴을 쳐다보면서 『무엇이 그렇게 무서우세요?』 하고 질문하였는데 Y씨는 덜덜 떨면서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지…옥…에…갈…까…봐…서…』라고 대답하였다. 『그럼 지옥에 안 가는 방법을 알려드릴까요?』 하자 반가운 듯 고개 를 끄덕거렸습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복음을 증거하였고 이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이선생님이 갑자기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내 손을 꽈악 쥐길래 다시 한 번 쳐다보니 온 몸이 굳어 있던 것이 다 풀 려 있었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온 몸이 굳었다가 다시 풀릴 수 있었는지 궁금했는데 그 분이 의자를 가리키며 좀 앉으라고 하더니 설명을 해줍니다. 친구의사의 사형선고같은 말을 듣고 난 후 갑자기 지나온 자신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는데 「나는 이제 죽으면 어떻게 될까?」하고 생각해 보았더니 「나는 아무 잘한 것도 없으니 죽으면 꼼짝없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지옥의 공포가 몰려 와서 꼼짝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옥에 안 가는 방법을 선택하고 나니 그만 안도감으로 온 몸이 자기도 모르게 풀리게 되었다고 하면서 다시 한 번 감사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지옥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일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마지막절 23절을 보니까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세상을 떠나서’라는 말이 나옵니다. 죽음은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 지옥으로 가야한다면 그야말로 공포스러운 것이지만,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된다면 이는 이 세상에서의 삶보다  훨씬 더 나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떠나서’란 말은 ‘천막을 거두고 떠난다.’는 의미입니다. 전쟁터에 나갔던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계속 텐트치고 살다가 전쟁에서 승리한 후 텐트를 거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땅에서의 나그네와 순례자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본향인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버지 집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훨씬 더 나은 일입니다

최화숙 성도님이 하스피스에서 경험한 일을 한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중학교 3학년인 소년에게  골수염이 발병하여 오른쪽 다리까지 절단하였는데, 골수염이 폐와 뇌에까지 전이되고 호흡곤란까지 있어서 호스피스에 맡겨진 것입니다. 형과 어머니가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이 소년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밤늦게 빈소를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조그만 일에도 눈물을 보이곤 하던 이 소년의 어머니가 전혀 울지 않고 있었을 뿐 아니라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습니다. 의아해 하면서 이 소년의 마지막이 어떠했는지를 묻자 뜻밖의 대답을 합니다

그 소년이 죽던 날 아침부터 자꾸 무엇이 보인다며 하늘을 쳐다보면서 웃고 놀라워하더랍니다. 전혀 아프다는 소리가 없었으며 호흡곤란도 별로 없었는데 계속해서 하늘을 쳐다보며『베드로가 보인다』고 하고『그 옆에 빛나 는 분은 누구시냐』고 묻기에 엄마는『무엇이 보이냐, 엄마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하자 나중에는 이 소년이 『큰일났다. 우리 엄마는? 나는 천국 가는데 우리 엄마는 지옥 가겠다』고 하면서 엉엉 울더라는 것이었다.
당황한 엄마가 어찌할 수가 없어서 아무것도 안보이지만 아이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아 저거 말이니? 나도 이제 보인다』라고 하자 이 소년이 너무 좋아하면서 자기가 보고 있는 하늘의 모습을 엄마도 보고 있는 줄 알고 하나하나 가리키며 설명하였다고합니다. 그후 저녁 무렵에 L군이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엄마, 저거 보았지요? 나 먼저 갈 테니 나중에 오세요』하며 숨을 거두었다는 말을 하면서『아마 우리 아이는 꼭 천국에 갔을 거예요. 확신이 들어요』라고 했다.

아까 말씀드린 박효진 장로님은 자신이 서울 구치소에 근무하는 동안 29명의 사형수가 사형당하는 현장에 있었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형수들은 좀 믿음이 약해보이는 것 같은 자들을 포함해서 모두 예외 없이 하나같이 두려워하거나, 실족하는 사람 없이 모두가 해같이 밝은 모습으로 천국가는 소망을 고백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신앙을 고백하면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히 2:15) 예수님께서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음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라고 주님께 간구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죽음의 날은 주 예수께서 우리를 받아주시는 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음이 끊임없는 절망의 시작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영원한 그리고  놀라운 소망의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도의 죽음을 보면서 오히려 감사의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  그리고 장례식을 천국환송식이라고 부름니다. 

우리 교회가 19년 전에 시작한 이래,  교회 식구였던 김창수, 정규상, 김재덕, 이양상, 이영자, 최희주, 최기남 이렇게 여러분들이 돌아가셨습니다.  곧 우리의 차례가 돌아올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가 “내게는 죽는 것이 유익하다.  이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낫다”란 고백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리고 이제 내일 모래 한국으로 귀국하시는 박규배 선생님과 서애자성도님을 위해 특별히 간구합니다.  앞으로, 에릭이, 크리스  그리고 별이가 결혼할 때도 또 오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저희들이 진실로 바라는 것은, 서애자 성도님께서는 이미 그런 삶을 살고 계시지만, 박규배선생님께서 꼭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꼭 붙드시고 신뢰하며 예수님을 소망으로 삼고 사시다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시는 귀한 축복이 있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 들어가시는 날까지 항상 기억하도록 애쓰며 기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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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죽는 것이 유익이라”  빌립보서 1:20-23.  7/8/18

20. 내가 간절히 기대하며 바라는 것은, 내가 어떤 일에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전과 같이 지금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나의 몸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21. (왜냐하면)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22. 그러나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 보람된 일이라면, 내가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3.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힌 채 재판결과에 따라 죽을 수도 있고 아니면 계속 살수도 있는 재판을 기다리며, 자신에 대해 염려 하며 걱정하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자신이 삶을 어떻게 생각하고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알려주고 았습니다.  바울은 사느냐 죽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리스도 이름이 높임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자로서 죽는 것이 유익하다라고 고백합니다.  사는 것은 주를 위해 사는 것이지만 죽는 것은 더욱 좋다란 고백입니다.  그냥 나은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낫다고 고백합니다.  주님과 함께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죽음을 유익이라고 생각합니까? 이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낫다란 고백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바울처럼 죽음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가진 자로서 죽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죽음이 두려운 것은 모든 관계를 잃게되는 절망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과의 관계도 또 모든 세상의 사물과의 관계도 끊어지는 것입니다.  어머님의 사랑은 물론 세상의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인데 이런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절망이요 두려움이요 이 절망과 두려움이 있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결국 지옥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절 23절에 바울은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죽음은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일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심판의 결과에 따라 지옥으로 가야한다면 그야말로 공포스러운 것이지만, 그러나 스데반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라고 주님께 간구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죽음의 날은 주 예수께서 우리를 받아주시고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는 날이기때문에 이 세상에서의 삶보다  훨씬 더 나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죽음이 끊임없는 절망의 시작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영원한 그리고  놀라운 소망의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우리 교회가 19년 전에 시작한 이래,  교회 식구였던 김창수, 정규상, 김재덕, 이양상, 이영자, 최희주, 최기남 이렇게 여러분들이 돌아가셨습니다.  곧 우리의 차례가 돌아올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가 “내게는 죽는 것이 유익하다.  이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낫다”란 고백이 우리 가운데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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