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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어떻게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이루시는가?” 마태복음 5:17-19 12/10/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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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어떻게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이루시는가?”  마태복음 5:17-19 12/10/20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지난 금요일 매일의 양식을 읽어보면 그 날 큐티해설을 기록한 랜디(Randy)란 분이 고등학교 2학년 (한국식으로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어느 볼링장에서 일을 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어느 금요일 저녁 그 볼링장에서 청소하는 분이 아파서 나오지 못했는데  이 고등학생이 이 청소하는 분을 위해서 밤늦게까지 진흙이 잔뜩 묻은 볼링장 바닥을 청소했습니다. 그리고 이 청소부를 깜작 놀라게 해주려고 자기가 청소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합니다. 

그런데 이 소년이 토요일 아침 일하기 위해서 볼링장 문에 들어서자 건물 안이 물바다가 되어 있었고 볼링 핀들과 화장지들, 그리고 게임 기록카드 용지가 들어있는 상자들이 물에 둥둥 떠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밤에 마루를 청소하면서 큰 수도꼭지를 깜빡 잠그지 않고 밤새 틀어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주인은 큰 미소와 함께 그를 꼭 안아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곤 “네 노력에 대한 상이야.” (열심히 했다) 라고 말했습니다. “For trying”

이 볼링장 사장 멋지지 않습니까?  내가 볼링장 사장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난리쳤을 것입니다  이 볼링장 사장 너무 위대한 분으로 보입니다.  볼링장 사장은 어떻게 이런 은혜와 사랑을 베풀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런 은혜와 사랑을 받아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고등학교때 이런 사랑을 받아 본 랜디란 분도 분명 자신이 평생 잊지 못할 이런 은혜를 경험하고 본인도 이런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되었으리라 짐작해봅니다.  (한 번도 용서와 은혜를 받아본 적도 없고 그런 용서와 은혜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들어 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과는 분명 다른 삶을 살게 되어있습니다. 마 18)

랜디란 분이 볼링장 주인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사랑도 놀라운 것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사람의 은혜와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10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속죄제물이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요일 4:9-10)

우리의 이성을 초월한 사랑이기에 너무 엄청나서 감조차 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사랑의 빚진자의 심정으로, 감사로, 예배자로 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 시간에 함께 모인 것도 그리고 때로 주님의 만찬을 드는 것도 이런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 식구들과 함께 있을 동안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외에는 기억하지 않기로 결단하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잠시도 잊지 않겠다는 결단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신실하게 믿음생활을 하는가는 얼마나 이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생각하며 사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롬 5:8) 

사도요한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말한 뒤에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요일 4:11)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요일 4:19)  바울은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로서 하나님을 닮아 용서하는 자가 되라고 당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일흔번에 일곱번씩 490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용서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런 용서와 사랑을 이미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도그를 돌로치는 자들을 위해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받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로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본문말씀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 5:17  (완성하러 왔다.) 혹은 이루시려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주님께서 율법과 선지자를 완성하셨습니까? 이루셨습니까?

율법과 선지자의 글에 의하면 우리는 죄인이요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할 자들입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법에 따른 마땅한 심판을 받아야 율법과 선지자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공의로운 울법과 선지자를 이루셨습니까?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셨다"라고 말씀합니다. (갈 3:13)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그 분을 우리 죄를 위한 제물로 삼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분에게 우리 대신으로 죄를 씌우셨다"라고 말씀합니다. (고후 5:21)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4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의롭게)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롬 8:3-4) the righteous requirement of the Law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약속에 따라 이 세상에 오시고 결국 십자가에까지 달리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다 이루었다" 라고 말씀하시고 숨을 거두시므로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이루신 것입니다.

무엇을 이루셨는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갈 3:13-14).  그래서, 이방인들도 믿기만 하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해 주시는 복을 주신 것입니다. (갈 3:8; 롬 3:21-22)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천하 만민이 그의 후손을 통해서 복을 받으리라 말씀하신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기록된 모든 율법과 선지서의 글을 이루신 것입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글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한 인간의 타락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목적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예수님께서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므로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를 가지게 하시므로 율법과 선지자를 이루신 것입니다. 롬 10;4


두번째로, 예수님이 율법과 선지자를 이루시는 분이라는 의미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 속에서 어떻게 예수님께서 이  율법과 선지자를 이루시는 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4:44-47)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이 말씀에 의하면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을 이루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실 것과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예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통해서 복음이 증거되야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구원의 복음이 세상끝까지 전해질 때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율법과 선지자의 약속은 교회가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는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하므로 이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의 복을 받을 때  온전히 이루어지고 그 때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최바울 목사님이 몽골에서 약 20년동안 사역하시다가 내 년에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분명히 말합니다. 한국으로 이사갑니다. 그러나 사역 대상은 “열방 민족”으로 동일합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기에 최선을 다해  힘써 노력하는 그분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지난 수요일 그리스에서 아프카니스탄사람들을 위해 선교하던 66세의 유경식 선교사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는 지금부터 10년전 2007년에 아프카니스탄으로 선교를 갔다가, 아프간 탈레반 반군에게 포로로 잡혔던 23명의 선교사들중 가장 나이가 많은 분으로 탈레반이 한명씩 죽이겠다고 그럴 때 제일 먼저 자기를 죽여달라고 자원했던 분입니다. 그때 당신은 전도사님 였는데 풀려나서  목사님 다시 아프카니스탄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그리스로 갔던 것입니다. 한국교회에는 이런 분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런 분들 증에 한 분이 바로 이 자리에 앉아 계십니다. 이런 분들이 곳 곳에 있는 한 한국교회는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한국교회가 될 것을 믿습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 20:24) 
우리는 지금부터 약 130년전에 목숨을 걸고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님들 덕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복,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이루신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복음을 증거하는 개인 그리고 복음을 증거하는 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18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가운데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아주 작은 사람으로 일컬어질 것이요, 또 누구든지 계명을 행하며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일컬어질 것이다

이 말씀을 살펴보면 자칫 우리가 구약의 모든 율법들을 빠집 없이 일일이 다 지켜야한다는 말씀으로 해석하기 쉽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지금도 제사를 드려야 하고, 제사드리기 위해서 제사장을 세워야 하고, 제사드리기 위한 성전을 만들어야합니까?  1년에 세번은 예루살렘에 가야합니까?  돼지고기나 오징어나 새우는 먹으면 안되고, 구약의 절기를 지켜야 하고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물론 지금도, 안식일 교인들은 돼지나 새우를 먹지 않아야하고, 여호와의 증인들은 피를 먹지말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수혈을 받으면 안됩니까?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리스도께서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셨다”라고 선포합니다. (엡 2:14-15)

예수님께서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말한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이란 모든 이스라엘에게만 해당하는 의식법과 시민법에 관한 것입니다.  더 이상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제사법 절기법 시민법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중심의 제사와 의식중심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법은 유대사람과 이방 사람을 가로막는 담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 이런 율법이 존재하는 이상 결코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계명 가운데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지 말고 가르치고 지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늘 본문이 담겨 있는 마태복음 5장 그리고 산상 수훈을 계속 읽어보시면 예수님께서 가장 작은 계명이라도 어기지 말고 가르치고 지킨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율법과 선지자를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선 21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줄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수님께서 얼마나 이웃과의 관계를 중요시 여기시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이 것이 적은 계명이라도 어기지 않고 철저히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뿐 아니라 그의 백성들이 이웃관계에서 사랑을 베푸는 자가 되게 하도록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8.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입니다. 9 "간음하지 말아라. 살인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탐내지 말아라" 하는 계명과, 그 밖에 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10    사랑은 이웃에게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롬 13)

갈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예수님 자신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그러니까 율법을 얼마나 철저히 지키는 가의 기준은 얼마나 이웃을 사랑하는가에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과 선자자의 글을 이루셨다는 것은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므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과 화해된 관계를 갖게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로 이웃을 자기자신처럼 사랑하는 자들로 만드셨 다는 뜻입니다.    만약,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죄의 용서를 받았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믿으면서도,  오히려 율법시대의 사람들보다  하나님을 사랑치 않고 불신자들보다 이웃을 사랑치 못 한다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리스도의 죽음이 헛된 것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은혜로 단지 의롭다 인정하실 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닮아 의로운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로 이웃을 자기자신처럼 사랑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갈 3:13-14을 다시 읽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사람이 되심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사람은 모두 저주를 받은 사람이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14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복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 사람에게 미치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하신 성령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단지 구원의 복을 주실 뿐 아니라 성령님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로마서 8:3,4)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4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의롭게)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도록;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르는 삶은 성령님의 열매를 맺는 삶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요  이웃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므로 우리를 위해 율법을 이루셨을 뿐 아니라, 이제 우리가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므로 우리 안에서 율법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Fulfilling the law for us and in us.) 

갈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우리가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할 때 우리 안에서 율법이 온전히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런 삶을 살라고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항상 강조해왔습니다. 우선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인 가정의 배우자에게 자녀들에게 그리고 교회의 지체들 서로 간에 이런  사랑을 실천하므로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율법을 이루는 역사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과 선지자를 이루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과 선지자를 이루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을 통하여 천하 모든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을 이루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그를 믿는 자들이 구원 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이요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이루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 천하 모든 만민이 복을 받게  하려면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신 이 복음이 땅끝까지 전파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므로 우리를 위해 율법을 이루셨을 뿐 아니라,
이제 우리가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므로 우리(의 삶) 안에서 율법을 이루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의 삶을 살면서 예수님을 증거하라고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르 살므로 나를 위해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이웃 사랑으로 표현되므로 주님께서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이루시기 위해 오신 역사가 내게는 물론 나를 통해서 이웃의 삶가운데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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