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사랑하라” (마 5:27-32) 1/28/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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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것이라 하였으나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지난 금요일 저는 치과에 갔었는데 그 곳에 70대 후반이나 80대 초반쯤 되보이는 한국인 노부부가 계셨습니다. 이 두분이 대화를 나누는데, 서로에게 짜증내고, 서로에게 핀잔주고 화내는 두분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왜 사랑하는 아내와 정상적으로 주고 받는 대화를 할 수 없는가? 왜 사랑을 가장 많이 베풀어야할 대상인 아내를 대할 때 겸손하지 못하고 인내하지 못하고 무시하며 야단치며 성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서로 물고 먹으면, 양쪽 다 멸망하고 말 것이니,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갈 5:15) 그리스도인들도 조심하지 않으면 서로간에 그리고 부부간에 서로를 무시하고 비하하고 물고 먹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라고 격려합니다. 그래야만 "서로가 서로를 존경하며 서로를 자기몸처럼 사랑하며" 화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혹시 아내가 맘이 안들더라도, 아내가 먼저 잘못한 것같더라도, 아내가 답답해 보이더라도, 심지어 아내가 먼저 짜증 내더라도, 나는 나의 잣대를 버리고 오히려 종이되어 아내를 나보다 더 귀한 존재로 존경하며 아내의 말을 듣겠다는 결단이 시시떄때로 있어야함을 느낍니다.
사실 이런 결단만 가지고 안되고, 평소에 아무 문제가 없을 때에 내 마음의 창고에 쌓여있는 분노를 계속 방출시켜야함을 느낍니다. 겸손함으로 먼저 손을 내밀어 사과도 하고 내 자신에 대해서 나의 느낌에 대해서 말하며 마음에 쌓여있던 분노들을 표출하며 마음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쓴 뿌리들을 계속 뽑아내는 저와 모든 남편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는 또 어떻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령하고 계신가?
본문 28절과 29절을 읽습니다: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진정 아내를 사랑하려면 “간음치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육체적인 간음은 물론 마음으로도 간음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성서적으로 “간음”이란 부부관계란 울타리를 떠난 모든 남녀간의 성관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아내를 사랑하려면 아내와만 성적관계를 맺고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성적 순결을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을 하십니까?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살전 4:3) 라고 말합니다. . 그리고 (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라고 말합니다. 음란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대로 하나님을 닮아 거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룩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간음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성경은 지속적으로 선포합니다. 또, 간음을 행할 때 이로인한 막대한 피해가 있기때문입니다.
제 아내와 제가 섬겼던 티화나의 교회는 약 23년전에 시작되었는데 그 23년동안 교회를 섬겼던 5명의 목회자 중에 두명이나 간음의 죄에 빠지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결국 이 두 목사들은 사임하고 이 두 부부는 이혼하고 자신들과 가정은 물론 교회까지 많은 피해를 입혔던 과거가 있습니다. 간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손상시킬 뿐 아니라, 가정뿐 아니라 모든 관계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을 하시는 또 한가지 이유는, 성도들도 성적유혹에 빠지기 너무 쉽기 떄문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순교한 성도들이 적지 않게 있을 정도로 지독한 박해가운데 신앙생활을 해야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이 그 심한 박해가운데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을까 너무 염려가 되어 디모데를 파송했었습니다. 다행히 이들은 박해가운데서도 믿음을 잘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편지하면서 바울은 “음행을 멀리하라”라고 권고합니다. (살전 4:3) 지독한 박해가운데 살던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성적인 유혹에 빠질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지금처럼 자유로울 때는 더 쉽게 성적인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최근에 옛날 세대 사람들은 상상조차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작년 12월 28일일짜 ‘조선일보’에 의하면, 올해 초에 발표 예정인 서울시의 (2018~2022) '인권정책 기본 계획' 초안 내용 중에는 “청소년들에게 콘돔을 지급하는 방안이 포함”되어있다고합니다. 이에 따르면, 서울시가 학교와 보건소 등에 청소년들을 위한 콘돔을 비치하고 공공기관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콘돔 자판기를 시범 운영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음행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가르치는 시대가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육체적인 간음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그렇게 하므로 지옥 안가는 것이 낫다 “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성적순결을 심각하게 생각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실지로 초대교회 교부였던 오리겐과 같은 사람은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여 거세를 하였습니다. 오리겐뿐 아니라 많은 성도들이 거세를 하므로, 니테아종교회의에서 이 것을 법적으로 금해야만 할 상황에 이르게되었습니다. 성적순결을 위해 거세하는 것, 이 것이 과연 주님이 원하시는 것입니까? 지금 예수님은 성적행위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남 녀에게 성을 선물로 주시고 성적 욕망을 주셔서 부부간에 그 성을 누리고 즐기게 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성관계를 부부란 울타리 안에서만 갖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야만 부부간에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기때문입니다. 성경은 부부 관계를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로 묘사합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위해 목숨을 버릴 정도로 사랑하고 교회가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것처럼, 남편과 부인이 서로에게 온전히 헌신된 관계를 기대하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부부가 이 세상에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드러내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사도바울의 권고를 읽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라” (4:3) 남편들이 진정으로 아내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려면 마음의 자세와 말로도 그 존경을 표시해야하지만, 음란을 버리라고 권고합니다. 몸과 마음의 성적인 순결함으로 오직 아내만을 사랑하는 거룩한 남편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절대로 이혼해서는 안된다. (아내만을 사랑하되 죽을 때까지 사랑하라)아내에게 헌신하라)
두번째로 오늘 31절에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것이라 하였으나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이혼증서에 대해 언급하십니다. 당시에 이혼당한 여자는 재혼을 하지 않는한 아무 데도 의지할 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혼증서가 있는 여자는 떳떳하게 재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이혼증서는 이혼을 당한 여자들이 재혼할 수 있도록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발행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혼증서를 빌미로 많은 남편들이 아내와 이혼하였습니다. 한동안 사랑했던 아내를 이제는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고하여 쓸모가 없다하여 이혼증서 하나 주면서 아내를 쉽게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북쪽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남쪽으로 향하시던 중 요단강 동편지역의 유대땅에 이르셨을 때에 (마 19:3)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이렇게 질문합니다.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마 19:4 )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예수님께서 부부를 한몸된 관계라고 말합니다. 부부를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관계라고 말씀합니다. 죽을 때까지 나뉘이지 못하는 관계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어떤 이유가 있으면 아내를 버릴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했던 것처럼 세상사람들은 언제든지 이유가 있으면 부부가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은 그 어떤 이유로던 헤어질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의하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는 것은 끝까지 죽을 날까지 사랑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바울도 에베소 교회의 남편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남편이신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하여 자기를 내주신 것같이,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여기서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을 낭만적 사랑을 의미하는 에로스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아가페란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물론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낭만적인 사랑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듯, 아내를 사랑하라는 이 사랑은 아가페적 사랑, 예수님의 희생적 사랑을 말합니다. 사랑할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같이 살고 사랑할만한 이유가 없어질 때 아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처럼 무조건적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라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는 이혼을 미워하노라”고 선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말씀 속에서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 선포하십니다.” 사랑하되 죽을때까지 서로 사랑하는 우리 모든 부부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하려면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혼을 그토록 싫어하시는데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혼의 사유가되는 한 예외적인 경우를 말합니다. (고전 7:15) “믿지 않는 사람 쪽에서 헤어지려고 하면, 헤어지게 하십시오. 이런 경우에는, 형제나 자매가 얽매일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평화롭게 살게 하려고 부르셨습니다.” 이 말씀은 심각한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5장에 보면 바울도 분명히 사람이 부모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사랑해야 하고 그 어떤 조건에서도 갈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부부가 한몸이 되고 갈릴 수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란 전제가 있기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진정으로 한몸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부부관계는 어떤 이유가 있으면 떠날 수 있는 관계입니다.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지않고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결혼했기때문에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헤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 그리고 아내를 버리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이란 전제 조건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닮아 거룩하기를 원한다면"이란 전제 조건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아내를 버리지 말라는 이 명령을 아무에게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따르기로 결정한 그의 제자들에게 명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배우자와의 관계보다 선행되어야할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란 사실을 의미합니다.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을 때에, 그녀에게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고백하면서 뿌리쳤습니다. (창39장)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면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남의 아내를 범할 수 없었던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께 죄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내만을 사랑하고 끝까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헌신이 전제되어야합니다.
온전한 사랑을 했던 아담과 이브사이에 금이가기 시작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부터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떠났을 때 아담과 이브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눈에 보이는 다른 성도에 대한 사랑은 구분될 수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부부간에 사랑도 구분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아내를 사랑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결단이 있어야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나와 나의 집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 하는 결단으로 살므로 부부간에 그리고 부자간에 또 성도간에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우리 마음 속에는 우리 자신도 의식치 못하는 많은 분노와 마음의 쓴 뿌리가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 자신의 분노와 우리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쓴 뿌리가 배우자에 대한 무시와 분냄과 불평으로 엉뚱하게 우리의 배우자들이 고통당할 때까 많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인 배우자를 진정으로 아끼고 귀중히 여기고 존경하고 순종의 마음으로 대하게 하소서. 겸손함과 사랑으로 자신에 대해서 자신의 느낌에 대해서 자신의 분노와 쓴뿌리에 대해서도 나눌 수 있는 사랑과 인내와 지혜를 주시옵소서. 먼저 배우자들에게 다아가 겸손으로 사랑으로 대화할 줄 아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 속에 쌓여있는 온갖 분노와 쓴뿌리가 하나 하나씩 제거되고 주님을 성품을 닮아가는 역사가 있게 하소서.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배우게 하소서 주님을 사랑하게 하소서. 배우자에 대한 진정한 사랑도 주님에게서 오는 줄 믿습니다. 주님의 사랑받은 자로서 진정으로 겸손하게 하시고 진정으로 배우자를 자신보다 낫게 여기는 맘의 자세를 갖게 하소서. 배우자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자가 되게 하소서. 주님을 더욱 사랑하므로 배우자를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의 거룩함을 닮아가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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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내를 사랑하라” (마태복음 5:27-32)
자신 안에 있는 분노와 쓴뿌리로 아내와 정상적인 대화보다는 핀잔과 냉대등으로 대할 수 밖에 없다면, 아내를 향한 자신보다 귀히 여기고 존중하는 종처럼 섬기겠다는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 또한 평상시에 사랑과 겸손함으로 자신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므로 분노와 쓴뿌리가 표출되고 제거되도록 해야한다. 그외 오늘 본문 말씀이 아내를 사랑하기 위하여 하여야할 것을 다음처럼 말씀하신다.
1.오직 아내만을 사랑하므로: “간음하지 말라” (마 5:27-31)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운 이웃인 아내를 사랑하라고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다. 주님꼐서 육체적인 간음은 물론 마음으로도 간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성서적으로 “간음”이란 부부관계란 울타리를 떠난 모든 남녀간의 성관계를 말한다. 주님께서 간음에 대한 심각한 심판을 경고하실 정도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마음으로도 성적 순결을 명령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부부를 한 몸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부 당사자관계뿐 아니라, 하나님께 역행하는 것이며 이론 인해 가정이 파괴되고 교회와 세상 사람들에게 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때문이다.
2.죽을 때까지 사랑하므로: “이혼하지 말라” (마 5:31-32)
예수님께서 부부를 한몸된 관계, 그리고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관계, 그러므로 죽을 때까지 나뉘이지 못하는 관계라고 말씀하신다. (마 19:4-6) 예수님은 그 어떤 이유로던 부부가 헤어질 수 없다고 단정하시므로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되 끝까지 죽을 날까지 사랑할 것으 명령하신다.
남편들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 아내를 사랑하라는 명령은 낭만적 사랑을 의미하는 에로스적 사랑이 아니라,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아가페사랑을 의미한다. 사랑할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같이 살고 사랑할만한 이유가 없어질 때 아내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처럼 무조건적으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3.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므로:
남편들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듯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령했던 바울은 부부가 헤어질 수 있는 예외적인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믿지 않는 사람 쪽에서 헤어지려고 하면, 헤어지게 하십시오. 이런 경우에는, 형제나 자매가 얽매일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평화롭게 살게 하려고 부르셨습니다.”고전 7:15
부부가 한몸이 되고 갈릴 수 없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란 전제가 있기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진정으로 한몸을 이룰 수 없다. 이 말은 배우자와의 관계보다 선행되어야할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란 사실을 의미한다.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