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겸손하라 (마태복음 18:1-6) 2/4/2018
페이지 정보
본문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위대합니까?" 하고 물었다.
2 예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 가지 못할 것이다. 4 그리고 하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나를 받아 들이듯이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 들이는 사람은 곧 나를 받아 들이는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6 "그러나 나를 믿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1. 자신의 교만을 깨달으라
1절을 다시 읽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위대합니까?" 하고 물었다. 지금 여기서 말씀하는 그 때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불과 수개월 전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미 수년동안 예수님과 함께 하며 배우고 훈련받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하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위대합니까?" 이제까지 가만히 있다가 하늘 나라가 다가 온 것 같으니까, 저들이 예수님을 따른 참 의도를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지상에서 이루어질 예수님을 왕으로한 정치적인 하늘나라를 꿈꾸고 있었고 이 나라의 국무총리가 되는 것이 예수님을 따른 이유요 이들의 꿈이었습니다.
주님의 대답이 무엇이었습까? “가장 똑똑한 자, 가장 리더십이 있는 자, 가장 말을 잘하는 자, 지혜로운 자, 경험이 많은 자, “가장 능력있는 자” “열심이 있는 자"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전도 많이 하는 자,” “가장 말씀을 많이 아는 자 혹은 기도 많이 하는"라고 대답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대신 주님은 그 곳에 있던 어린이 하나를 불러세우고 이들이 기대치 못했던 엉뚱한 대답을 하십니다 (3절)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 가지 못할 것이다. 4 그리고 하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
가장 큰 사람이 되려는 생각으로 산다면 너희는 천국에서 첫째 두째는 말할 것도 없고, 꼴찌로도 못들어간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늘 나라에 들어가려면 생각을 바꾸어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생각을 뜯어 고쳐 어린아이처럼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4절에 보니까 어린이는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어린이처럼 겸손한 사람만이 하늘나라 백성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은 겸손이 단지 희망사항 정도가 아니라 천국백성이 되고 안되고를 좌우하는 중요한 조건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의 이들을 향한 목적은 이들이 어린이처럼 겸손하게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똑같은 소원으로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 것이 구원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겸손하게 되는데 첫째로 방해되는 것은 자신이 교만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자신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천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된줄 알고 자신들을 과대평가 하던 제자들은 자신의 문제를 볼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교만하면서 깨닫지 못했던 대표적인 자들이 바리새인들입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의인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의 구원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스스로 본다고 하므로 죄를 용서 받지 못하고 죄가 그대로 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 9:41) 이들은 다른 사람에게 존경받고 섬김받기를 원하면서도 자신들이 교만하다고는 절대 생각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문제가 제자들이나 바리새인에게만 해당되는 문제입니까? 저와 여러분도 우리가 얼마나 교만한지 깨닫기 쉽지 않습니다
제가 멕시코에서 사역할 때 하루는 어떤 청년이 제게 반말을 하는데 얼마나 기분이 나쁘던지 존댓말을 쓰라고 열을 올렸던 것을 기억합니다. 중미나 남미 사람들은 친근감을 느끼면 반말을 쓰기도합니다. 그래서 부모님들에게는 반말을 사용합니다. 그런데도 제겐 용납이 안되었던 것입니다. 네비게이토선교회의 론 새니란 분은 “섬김의 종인지 아닌지는 사람들로부터 종 취급을 당할 때 알 수 있다고”고 말했습니다. 겸손 겸손 섬김 섬김하여도 막상 종취급을 당하면 본색을 드러내고 열을 올린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는 무시를 당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내가 교만한지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도 보통 자신이 교만한 자란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쉽습니다. 나폴레옹은 작은 키로 어릴 때부터 조롱을 많이 받았다고합니다 그리고 그는 열등감의 보상심리로 결국 프랑스의 황제가 되었다고합니다. 그러니까, 열등의식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실지로 높아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높아지면 우월감을 갖고 높아지지 못하면 계속 열등감을 갖는 것입니다. 열등감이든 우월감이든 누가 높고 누가 낮다란 이분법적 사고를 가진 사람, 그리고 비교 속에 사는 사람들은 높아지기 위해 사는 사람이요, 교만한 사람이요 다 생각을 바꾸고 회개해야할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운데 교만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교만이란 병은 저와 여러분을 포함한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가 앓고 있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겸손해지려면 우선 우리 자신들이 교만이란 중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할 것입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겸손해 지려면 자신의 교만을 인식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3절을 다시 읽습니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 가지 못할 것이다. 4 그리고 하늘 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어 이 어린이와 같이 되는 사람이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라고 말씀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잘 것 없게 여기지만, 어린이들은 세상적인 야망이나 권력에 대한 욕심이 없습니다 어린 아이는 어른들처럼 사람을 차별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순진한 어린이는 왕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그렇다고 비천한 사람을 무시할 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무와도 쉽게 사귑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런 순수한 어린이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순수함이 어른들때문에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 순수한 어린이가 어른들로부터 야단과, 칭찬과, 무시당한 말과, 비교하는 말, 인정받는 말, 심지어 저주 받는 말을 들으면서 영향을 받습니다. 특별히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다른 아이와 비교되며 평가를 받기 시작합니다 어린이들이 받는 상장에 보면 “다른 학생들보다 우수하므로"란 표현이 있습니다. 야단은 물론이지만 때론 칭찬과 격려의 말을 통해서도 어린이들은 비교하는 것을 배우고 남들보다 뛰어나려는 야망을 갖고 살게됩니다. 결국 제자들처럼 “내가 세상의 최고가 되고 중심이 되고싶은 욕망 가운데 살게됩니다
그런데 생각을 바꾼다면 과연 어린아이처럼 되고 겸손해질 수 있습니까? 아니 그렇게 생각이 바뀌어집니까? 적어도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생각이 바뀌어 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다음 장인 19장에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계속 어린이들을 무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던 전날밤까지 서로 큰자가 되겠다고 다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우리들은 생각을 바꿀 수 있고 어린이처럼 될 수 있을까? 한글 성경에는 오늘 본문 3절이 “너희가 돌이켜" 혹은 “너희가 생각을 바꾸어 어린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영어성경과 헬라어 원어 성경을 보면 이 이 부분을 “unless you are converted; “너희가 바뀌어져 어린이 같이 되지 아니하면”라고 번역합니다. 스스로 “바꾸어"가 아니라 “바뀌어져"입니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서 혹은 무엇인가에 의해서 (수동적으로) 바뀌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바뀌도록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너희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서 죽으셨음을 믿고 내가 예수님을 받아들일 때 새롭게 하나님의 자녀로, 영적인 아기로 태어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이제 우리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에 의하면 모든 사람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죽으셨으므로, 너 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죄인이요. 또한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안목으로 내 자신을 보고 다른 사람들을 보는 사람들은 더 이상 세상적인 기준으로 내 자신을 보거나 또 다른 사람을 대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육신의 잣대로 사람을 비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만 생각이 바뀌어지고 어린이처럼 순결한 마음, 겸손한 마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직 복음을 모르기에 거듭난 경험을 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우리가 거듭난 새로운 생명을 소유했지만 크게 되고저 하는 욕망이 끊이 없이 존재합니다 우리 속에 영적인 싸움은 계속 지속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약 1:21) 그러니까 “옛 사람에 속한 더러움과 넘치는 악등 옛사람에 속한 것을 계속 버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거듭나게 한 그 말씀, 우리 심령 안에 이미 심어진 그 복음을 계속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지속적으로 세상에 속한 생각은 버리고 복음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내가 크게 되고저 하는 욕망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하나님의 열정. 나를 겸손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열정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계속 복음을 묵상하고 받아들이므로 우리의 생각이 지속적으로 변화되고 어린아이처럼 진정으로 겸손해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이제 마지막으로 5절과 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 누구든지 나를 받아 들이듯이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 들이는 사람은 곧 나를 받아 들이는 사람이다, 6 그러나 나를 믿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깊은 바다에 던져져 죽는 편이 오히려 나을 것이다.”
겸손하려면 생각이 바뀌어 어린이처럼 되라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어린이 같은 보잘 것 없는 자를 받아들이라라고 말씀합니다. 그 것이 곧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당시 어린이는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업신여김을 받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6절에 보면 어린이란 표현대신에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혹은 작은 사람들)이란 표현을 씁니다. 10절에도 "너희는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라고 경고하십니다
참 겸손은 어린이처럼 세상사람들이 천히 여기는 자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자, 보잘 것 없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환영하고 받아주고 섬기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구한말 시대 때 가난하고 못 배우고 더럽고 냄새나고 연약한 조선민족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온 선교사님들이 떠 올랐습니다 그들 중에 많은 분들이 조선 땅에 뼈를 묻기까지 섬겼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보잘 것 없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탈북민을 섬기는 선교사님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돌보기를 원치 않는 장애자 어린이들을 입양하여 섬기는 분들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가장 낮은 자로 오셔서 가장 낮은 자들, 보잘 것 없는 자들을 섬기신 주님을 본받는 자들입니다. 진정 겸손한지를 알려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 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이아브라함목사님께서 자랑하시려고 하신 말씀은 아니었지만 제게 아리조나 지구촌교회에는 박사가 5분이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속으로 우리 교회도 박사가 한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반면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은 교회 모임에 Homeless들이 많이 옵니다 Homeless들이 오기 시작하니까 여러 식구들이 그 교회를 떠나버렸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목사로서 과연 박사들이 많은 교회와 Homeless들도 오는 교회 중 어떤 교회를 더 선호할까? 그리고 만약 우리 교회에 박사 한분이 오고 또 Homeless가 한 분 온다면 나는 누구를 더 환영하며 누구를 더 받아줄 것인가?
사도바울은 로마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라고 권고합니다” (롬 12:16) 분명 예수님은 어린이처럼 “보잘 것 없는 한 영혼, 비천한 한 영혼을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업신여기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자들을 섬기는 것이 자신을 섬기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마 25)
저와 여러분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을 환영하고 섬기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제 자신에게 이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저는 보잘 것 없는 자,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를 섬기고 사귀기는 커녕 그런 사람을 한 사람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자를 섬기기는 커녕 한 사람도 알지 못하다는 사실은 내가 겸손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 나는 겸손하지 않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생각하고 꿈꾸는 부흥이 유능하고 그럴듯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그런 교회라면, 제자들이 갖고 있던 야망, 세상사람들이 추구하는 성공과 다른 점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제자들의 관심은 누가 가장 큰 가에 있었지만, 예수님의 관심은 누가 종이되어 보잘 것 없는 자를 받아들이고 섬기는 삶을 살 것인가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천국백성의 특징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알고 지혜롭고 능력있고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평가에 신경쓰지 않고 다른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어린이처럼 (보잘 것 없는) 겸손한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어린이와 같은 보잘 것 없는 자들을 섬기기 원하십니다. 그런 삶은 우리의 이제 것 삶과는 너무나도 다른 도전적인 삶인 줄 믿습니다 그러나 그런 도전적인 삶을 조금씩이라도 추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우리 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너희는 겸손하라” (마태복음 18:1-6)
1. 자신의 교만을 깨달으라
지금 제자들은 자신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고 천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된줄 알고 자신들을 과대평가 하던 제자들은 자신의 문제를 볼 수 없었 다. 바리새인들도 다른 사람에게 존경받고 섬김받기를 원하면서 도 자신들이 교만하다고는 절대 생각치 못했다. 그런데 자신을 과 대평가하는 문제는 제자들이나 바리새인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교만이란 병은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가 앓고 있는 죽음 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우리가 겸손해지려면 우선 우리 자신들이 교만이란 중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한다. 자신이 죄인 임을 인정치 못하는 자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없다.
2교만한 생각을 바꾸라 (be changed 마 18:3)
많은 영어성경과 헬라어 원어 성경은 이 구절을 “너희가 바뀌어져 어린이 같이 되지 아니하면 (unless you are converted)” 이라고 번역하였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바꾸도록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서 죽으셨음 을 믿고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거듭난 새로운 생명을 소유한 후에도 크게 되고저 하는 욕망이 끊이 없이 존재하므로 우리 속에 영적인 싸움 은 계속 지속된다. 그래서 야고보는 “옛 사람에 속한 더러움과 넘치 는 악등 옛사람에 속한 것을 계속 버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거듭나게 한 그 말씀, 우리 심령 안에 이미 심어진 그 복음을 계속 받아들이라고 말씀한다. (약1:21) 예수님께서 모든사람을 위해 죽으셨으므로, 너 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죄인이요.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들이라는 복음의 선포가 우리의 생각을 바꾼다.
3.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라.
겸손하려면 생각이 바뀌어 어린이처럼 되라고 말씀하실 뿐 아니 라, 어린이 같은 보잘 것 없는 자를 받아들이라라고 말씀하신다. 그 것이 곧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참 겸손은 어린이처럼 세상 사람들이 천히 여기는 자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자, 보잘 것 없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환영하고 받아주고 섬기는 것이다.
사도바울도 로마성도들에게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라”고 권고한다”(롬 12:16) 내가 얼마나 교만한지 혹은 겸손하지를 알려면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섬기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제자들의 관심은 누가 가장 큰 가에 있었지만, 예수님의 관심은 누가 종이되어 보잘 것 없는 자를 받아들이고 섬기는 삶을 살 것인가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천국백성의 특징이다고 말씀하셨다.겸손하기
위해서 작은 자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마음자세를 배워야 한다.
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너희는 겸손하라” (마태복음 18:1-6)
1. 자신의 교만을 깨달으라
지금 제자들은 자신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고 천국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된줄 알고 자신들을 과대평가 하던 제자들은 자신의 문제를 볼 수 없었 다. 바리새인들도 다른 사람에게 존경받고 섬김받기를 원하면서 도 자신들이 교만하다고는 절대 생각치 못했다. 그런데 자신을 과 대평가하는 문제는 제자들이나 바리새인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교만이란 병은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가 앓고 있는 죽음 에 이르게 하는 병이다. 우리가 겸손해지려면 우선 우리 자신들이 교만이란 중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한다. 자신이 죄인 임을 인정치 못하는 자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없다.
2교만한 생각을 바꾸라 (be changed 마 18:3)
많은 영어성경과 헬라어 원어 성경은 이 구절을 “너희가 바뀌어져 어린이 같이 되지 아니하면 (unless you are converted)” 이라고 번역하였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바꾸도록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서 죽으셨음 을 믿고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거듭난 새로운 생명을 소유한 후에도 크게 되고저 하는 욕망이 끊이 없이 존재하므로 우리 속에 영적인 싸움 은 계속 지속된다. 그래서 야고보는 “옛 사람에 속한 더러움과 넘치 는 악등 옛사람에 속한 것을 계속 버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를 거듭나게 한 그 말씀, 우리 심령 안에 이미 심어진 그 복음을 계속 받아들이라고 말씀한다. (약1:21) 예수님께서 모든사람을 위해 죽으셨으므로, 너 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이 죄인이요.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들이라는 복음의 선포가 우리의 생각을 바꾼다.
3.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받아들이라.
겸손하려면 생각이 바뀌어 어린이처럼 되라고 말씀하실 뿐 아니 라, 어린이 같은 보잘 것 없는 자를 받아들이라라고 말씀하신다. 그 것이 곧 주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참 겸손은 어린이처럼 세상 사람들이 천히 여기는 자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자, 보잘 것 없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환영하고 받아주고 섬기는 것이다.
사도바울도 로마성도들에게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라”고 권고한다”(롬 12:16) 내가 얼마나 교만한지 혹은 겸손하지를 알려면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섬기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제자들의 관심은 누가 가장 큰 가에 있었지만, 예수님의 관심은 누가 종이되어 보잘 것 없는 자를 받아들이고 섬기는 삶을 살 것인가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천국백성의 특징이다고 말씀하셨다. 겸손하기 위해서 작은 자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마음자세를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