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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가의 헌신 (사도행전 9:36-42) 여전도회 헌신예배 2/11/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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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가의 헌신 (사도행전 9:36-42)
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38  룻다가 욥바에서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와 달라고 간청하여 39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가서 이르매 그들이 데리고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가 살아난 것을 보이니 42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 43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교회지체로서 서로 서로에게 헌신함:
도르가가 살던 욥바는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40마일쯤 떨어져있는 지중해 항구도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명령하니까, 이를 피해서 다시스로 도망가려고 요나가 배를 탔던 항구도시입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의 수도인 Tel Aviv가 바로 옛날에는 욥바라고 불리던 도시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도르가가 속해있던 욥바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의 모임 장소가 어떤 곳인지, 그리고 목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목사가 있었다면 어떤 분인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 식구들의 관계성이 어떠했는지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29절에 보니까 도르가란 여인이 죽게되자 교회식구들이 결정하여  죽은 도르가를 살리기 위해서 대표를 파송하여 릇다에 있던 베드로를 모셔오도록 합니다.  베드로가 청탁을 받고 황당했을지 모릅니다.  예수님 이후 베드로등 사도들에 의해 많은 기적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누구도 사람을 살린 역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이 두사람이 가서 간청했다고 말합니다. 단지 단순한 부탁이 아니라 떼를 쓴 것입니다. 도르가를 살려야만 하겠다는 간절한 염원과 사랑이 없었다면 이렇게 간청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들과 함께 욥바에 도착했을 때에 모든 과부들이 이 죽은 도르가로 인해 울며 애통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모두 도르가에 대한 진실된 고마움과 애통함과 사랑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도르가가 죽음에서 살아났습니다.

베드로가 밖에 나가서 도르가를 살려달라고 간절히 간구하며 기다리고 있을 과부들과 성도들을 불러 그들에게 살아난 도르가를 보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도르가의 식구들이나 친족이 함께 와서 애통해했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영적가족인 교회식구들이 그 녀의 죽음을 애통해 했고, 혹시 그녀를 살릴까하여 베드로를 청했던 것입니다. 도르가는 자신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함께 울어주는 그런 운명공동체로서의 교회에 속해있었습니다.  일시적이거나 조건적인 관계가 아니라, 죽음이 후에까지라도 끝까지 책임지고 돌볼 수 있는 관계성 속에 있었습니다.  도르가는 이런 교회의 지체로서 목숨을 다하도록 선행과 구제로 섬긴 것입니다.

오늘 본문 37절을 보시면 도르가를 여제자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38절을 보시면 교회식구들을 제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는 명령을 실천하는 교회였습니다.  이목사님께서 오셔서 몇번 우리교회 같은 교회가 없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에 비해 특별히 내 세울 것 없음에도 왜 이목사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가?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우리 서로에 대한 헌신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지난 주에 우리교회를 거쳐간 백장용목사님과 잠간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이 21세기 침례교회 몇 분의 이름을 언급하며 이들이 일반교회 20명 혹은 30명에 해당하는 귀한 분이라고 제게 그럽니다.  그리고 과장이 아니라고 덧붙입니다.  그러면서 본인이 부목사로 섬기는 교회가 성장하여 장년이 200명이나 되지만 언제 떠날지 모를 분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예로 교회식사 반찬이 짜다 싱겁다란 사소한 문제로 다투다가  교회를 떠나는 분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별 것 아닌 것가지고 다툴 수 있고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갈등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러나 내가 다투고 언성을 높이는 그 대상이 새벽에라도 문제가 생기면 부탁할 수 있는 분이란 것이 우리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까?.)

로마서 12장은 그리스도인의 헌신에 대해서 말씀하는 장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런데, 구체적으로 교회의 삶속에서 어떻게 헌신된 삶을 살 것인가를 말씀하기 전에  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사도바울은 로마성도들에게 어떻게 각 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따라 섬길 것인가를 말씀하기 전에.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속한 헌신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헌신의 행위에 앞서 서로에게 헌신된 관계가 전제되어야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로마서12장 10절에 한글 성경에는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영어성경과 원어성경에는 “교회의 지체된 우리가 서로에게 헌신하라고 말합니다”. Be devoted to one another in love. Honor one another above yourselves. devotion이란 우리 자신을 드리라는 표현입니다.  우리는 교회로서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헌신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서로에 대한 헌신을 확인하며 욥바교회 처럼 도르가처럼 더욱 서로 서로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번째로, 본문 36과 37절을 읽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37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그러면 그가 어떤 선행과 구제를 행했는가?  39절에 보니까, 베드로가 죽은 도르가를 살리려고 왔을 때, 과부들이 슬피 울며 도르가가 생전에 그들을 위해 만들어 준 옷을 내어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도르가는 과부들을 위하여 바느질로 열심히 옷을 만들어 준 것입니다.  도르가는 복음을 증거한다든지, 말씀을 가르친다든지, 예언을 한다든지,  병을 고친다든지, 기적을 행한다든지 어떤 특별히 드러나는 사역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도르가는 자신이 할 줄 아는 바느질을 통하여 사도들이나 특별한 은사나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없었던 사역을 감당한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목사가 되서 성도들에게 설교하고 성경을 가르쳐야만  하나님의 종이요 헌신된 삶을 살 수 있다는 잘못된 관념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지로 목사란 직분이 없으면 아무리 실력과 은사와 경험이 있더라도 교회에서 보통 인정을 안해주고 사역의 기회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까 너도 나도 목사가되는 것입니다. 자격없는 목사도 많이 있습니다.  교회숫자에 비해 목사 숫자가 훨씬 많게 되었고, 차라리 목사가 아니었다면 어느 교회에서던 잘 섬길 수 있을 텐데 섬길 교회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목사도 많습니다. ,

반면 자기는 목사가 아니고 평신도니까 교회모임만 출석하면 자신의 의무를 다 한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도르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도르가는 목사나 집사란 티이틀도 없었고 단지 제자라고 불렸을 뿐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으로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 주님과 교회와 이웃을 섬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없는 것으로, 내게 주시지 않은 것으로 헌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으로 헌신하기 원하십니다.  그 것이 찬양이든, 식탁을 섬기는 것이든, 회계든, 청소든, 옷을 만들어주는 것이든, 빵을 굽는 것이든, 안내하던 것이든, 대접하는 것이든 소홀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는 나는 정말 아무런 기술도 은사도 지식도 말주변도 없고 몸둥아리 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할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몸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놀랍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약 200년전 이야기입니다.  영국의 어느 시골 마을 교회에서 선교집회가 있었습니다.  그 모임에 가난한 집안의 바비라는 소년이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헌금시간이 되었습니다.  헌금위원이 헌금 바구니를 들고 이 소년에게 왔을 때, 바비가 헌금위원에게 헌금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저한테는 제 자신 밖에는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한 뒤 헌금 바구니 위에 그의 발을 들여 놓았다고합니다. 이 소년의 이름이 Robert Moffet입니다. 그는 비록 가난했고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선교사로 헌신하여 이미 1816년 그의 나이 불과 21새에 남아프리카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여러부족을 복음화 시켰고 성경을 번역하였으며 아프리카 정글지역을 탐험하고 개발하여 후배 선교사들을 위한 기초작업을 하신 분입니다.  19세기의 가장 헌신된 선교사로 알려진 리빙스턴의 아프리카 사역도 이 분 때문에 가능케 되었습니다.  그의 큰 딸이 리빙스턴과 결혼하므로 그의 장인이시도 합니다.  우리 몸을 주님께 온전히 드릴 때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우리 생각 이상으로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몸이 있는 이상 아무도 자신은 헌신 할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도르가처럼 우리가 가진 보잘 것 없는 능력이나 특기로 온전히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오병이어로 5천명을 먹이신 기적처럼 귀하게 사용하실 것을 믿습니다.


내 처지를 섬김의 기회로 섬기라: 자신의 처지 가운데 헌신하라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도르가가 죽었을 때  그녀의 남편 혹은 자녀들이 그의 옆에 있었다는 말이나 그녀를 위해 애통했던 식구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도르가가 살아난 이 후에도 그의 식구들이 그자리에 있었다는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르가가 과부였거나 아니면 믿음때문에 불신자인 남편에게 버림받아 혼자 살던 여인이거나 혹은 아예 결혼을 한 경험이 없는 노처녀였을 수도 있습니다.  아뭏든 도르가는 가정적으로는 자신을 돌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외로운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모든 교회식구들이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의 죽음을 애통해 했지만, 특별히 모든 과부들이 그녀의 죽음을 몹시 슬퍼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도착했을 때, 이 분들이 도르가가 자기들을 위해 지어준 속옷과 겉옷을 보여주었습니다.  도르가가 선행과 구제에 헌신하였지만, 특별히,  자신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과부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며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도르가는 자신을 돌보아 줄  남편이나 자식이 없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신의 신세를 타령하거나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와 같은 여려운 처지에 있는 자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드린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같은 아파트에 친하게 지냈던 두 권사님이 계십니다. 두 분 다 혼자 사시는 분들이요 경제적인 여건도 비슷햇습니다. 그런데 이 중 한권사님은 항상 힘들게 겨우 사시는 분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권사님은 항상 감사와 기쁨이 있고 풍성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권사님의 특징은 항상 나누어주기를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면 여유있게 만들어서 이웃에게 나누어줍니다.  어디선가 무엇을 얻어오시면 조그만 것이라도 이웃과 나눕니다.  그러니까 이웃도 그 권사님에게 베풉니다. 그러나 다른 권사님은 남에게 전혀 베풀지도 모릅니다.  자기 것만  챙기다 보니까 이웃도 그와 나누는 분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항상 쪼들리면서 사십니다.

오늘 본문 36절을 보시면 도르가는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이”했다라고 말합니다.  혼자 사는 여인이 무엇이 있다고 선행과 구제를 심히 많이할 수 있었겠습니까?  분명 도르가가 베푸는 삶을 사니까 하나님께서 베풀 것을 공급해 주신 것입니다.  도르가는 자신의 외로운 처지를 불평하고 원망하기 보다는,  혼자라는 자신의 처지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사랑과 목적을 믿었습니다.  자신에게 혼자라는 처지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의도가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은 것입니다.  가족이 없이  혼자 살았지만 외롭고 힘든 과부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그들을 찾아가 섬겼고 또 하나님께서는 도르가가 심히 많은 구제와 선행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때론 우리에게 고통과 어려운 처지를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시고 우리를 절대적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실 때는 우리를 향한 목적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케 하시는 이 시로다.”라고 말씀합니다  (고후 2:4) 

선한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에게 개 취급당했던 고난을 경험한 자이었기 때문에. 강도를 만나 고난 받는 자를 만났을 때  동정심을 갖고 그를 돌볼수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로할 수 있는 이유도, 주님께서 친히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시험을 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설명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을 낭비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고통과 어려움을 허락하신 주님의 목적을 이루라는 말인줄 압니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신세타령하고 계신 분은 안계십니까?  도르가처럼 여러분과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그의 백성들이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고통과 외로움 가운데 있는 자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던 주님의 안목으로 우리의 처지를 바라보며,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 자들을 위한 섬김의 삶을 사는 공동체가 되고 개인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도울 수 있도록 풍성하게 채우시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오늘 나눈 말씀을 정리합니다
첫째로 도르가처럼, 교회의 지체로서 서로 서로에게 헌신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두째로, 도르가처럼, 자신이 가진 것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과소 평가하지 말고 그 것으로 헌신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세째로, 도르가처럼, 자신이 처한 처지에 대해 신세타령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처지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사랑과 목적을 믿고 오히려 같은 처지에 있는 자를 돕는 일에 헌신하므로 풍성한  삶을 사시는 여전도회 회원과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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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도르가의 헌신 (사도행전 9:36-42)

1.  교회의 지체로서 헌신함
 도르가가 죽게되자 교회식구들이 결정하여  죽은 도르가를 살리기 위해 서 대표를 파송하여 릇다에 있던 베드로에게 간청했습니다. 도르가를 살려야만 하겠다는 간절한 염원과 사랑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들과 함께 욥바에 도착했을 때에 모든 과부들이 이 죽은 도르가로 인해 울며 애통하고 있었습니다.  영적가족인 교회식구들이 그 녀의 죽음을 애통해 했고, 혹시 그녀를 살릴까하여 베드로를 청했던 것입니다. 도르가는 자신 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함께 울어주는 그런 운명공동체 로서의 교회에 속해있었습니다.  일시적이거나 조건적인 관계가 아니라, 죽음이 후에까지 라도 끝까지 책임지고 돌볼 수 있는 관계성 속에 있었습니다. 도르가는 이런 교회의 지체로서 목숨을 다하도록 선행과 구제로 섬긴 것입니다. 
도르가를 여제자라고 표현합니다 (37). 그리고 교회식구들을 제자들이라고 표현합니다. (38)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는 명령을 실천하는 교회의 지체였습니다. 

2.  하나님이 주신 경험, 특기, 은사로 헌신하라
 도르가는 복음을 증거한다든지, 말씀을 가르친다든지, 예언을 한다든지, 병을 고친다든지, 기적을 행한다든지 어떤 특별히 드러나는 사역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도르가는 자신이 할 줄 아는 바느질을 통하여 사도들이 나 특별한 은사나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할 수 없었던 사역을 감당한 것입니다. 도르가는 목사나 집사란 티이틀도 없었고 단지 제자라고 불렸을 뿐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으로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해 주님과 교회와 이웃을 섬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없는 것으로, 내게 주시지 않은 것으로 헌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으로 헌신하기 원하십니다.  그 것이 찬양이든, 식탁을 섬기는 것이든, 회계든, 청소든, 옷을 만들어주는 것이든, 빵을 굽는 것이든, 안내하던 것이든, 대접하는 것이든 소홀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놀랍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이 허락하신 처지에서 헌신: 내 처지를 섬김의 기회로 삼으라
도르가가 선행과 구제에 헌신하였지만, 특별히,  자신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과부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며 살았습니다.  도르가는 자신을 돌보아 줄  남편이나 자식이 없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신의 신세를 타령하거나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와 같은 여려운 처지에 있는 자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드린 것입니다.  도르가는 혼자라는 자신의 처지를 허락하신 절대적인 주권과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혼자라는 처지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외롭고 힘든 과부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그들을 찾아가 섬겼고 또 하나님 께서는 도르가가 심히 많은 구제와 선행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을 낭비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고통과 어려움을 허락하신 주님의 목적을 이루라는 말인줄 압니다.  우리가 어려 움 가운데 있을 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신세타령하기보다는 도르가
처럼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을 섬길 수 있는 기회로 삼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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