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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낙심하십니까? 고린도후서 4:16-5:2 2/18/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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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낙심하십니까?  고린도후서 4:16-5:2
16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17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겪는 일시적인 가벼운 고난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을 우리에게 이루어 줍니다. 18 (그러므로) 우리는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1  (왜냐하면)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질 때에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집, 곧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압니다.  2 우리는 이 장막 집에서 신음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으로 덧입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그리스도인들을 공격할 때 보통 두가지 전략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첫째는 교만하게 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낙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교만해지지만 또 낙심하기도 아주 쉬운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날 그날, 서로 격려 (권면)하라.”고 말합니다 히 3:13  우리가 그 날 그 날, 매일 격려가 필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매일 낙심하기 쉽기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를 낙심케 하는 것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기도하다가도 낙심합니다. 눅 18: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도록 간청하 는 과부에 대한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만큼 기도하다가도 기도해봤자 소용 없다고 낙심하고 기도를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또 바울도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렇게 권고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살후 3:13) 또 갈라디아의 교회들에게 같은 권고를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9,10)  주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선한 일을 하다가도 낙심하여 “이젠 할만큼 했다”  “더 이상 해봤자" 하고 선한 일을 포기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 똘짝 밭에 뿌린 씨는 말씀을 듣고, 곧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진다. (낙심) 가시덤불 속에 뿌린 씨는 말씀을 듣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닥치면 낙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포기합니다

이 외에도 사탄이. 우리를 낙심케 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기들이 너무 다양하고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바울은 분명하게 “우리는 낙심하지 아니하지 않습니다”라고 선포합니다.  만일 인생의 별 어려움이 없는 분이 ”나는 낙심하지 아니한다”라고 했다면,  별로 감동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낙심하지 아니하노라”할 때는 우리는 정말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바울은 목숨의 위협과 핍박과 환난과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 자주 살 소망까지 끊어진 상황에서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정도의 스트레스 가운데 살았던 자이기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바울은 이런 극한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었는가?

16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그러므로란 접속사는 그 전 4:7-15절까지 낙심하지 않는 이유를 여러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본문 자체에 묘사된 사도바울의 낙심하지 않는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매일 매일 새로워집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gradually dying  우리의 겉사람은 조금씩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점점 약해지고 힘들어지고 쉽게 다치고 쉽게 병들고 . (교회 모임에 참석하는 것조차 힘들어집니다)  몸이 약해지니까 말을 안들으니까 마음도 약해지고 점 점 한숨 쉬는 일이 많아집니다.

사도바울이  “낙심하지 않는다"라고 고백할 때 그의 나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병약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첫 선교대상이었던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 내가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은, 내 육체가 병든 것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14  그리고 내 몸에는 여러분에게 시험이 될 만한 것이 있는데도, 여러분은 나를 멸시하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았습니다” (갈 4:13-14)라고 고백합니다.  이런 병약한 상태에서 그는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25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26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27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그는 골병이 든채로 사역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세번이나 낫게 해달라고 간구했지만 주님은 오히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에서 완전하게 된다" 하고 말씀하시면서 치료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낙심치 않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것은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고후 12:10)

사도바울이  몸이 점 점 쇠약해진다고 해서 마음이 약해지거나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  우리의 속사람 이 새로워지는 삶을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속사람이 새로워진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바울이 기록한 서신들을 보니까 이와 비슷한 표현들이 있습니다.  엡 4: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The spirit of your minds)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속사람이 새로워진다는 것은 심령이 새롭게 되어 점 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입니다    골 3:9  너희가...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속사람이 새로워질려면 새로운지식이 필요합니다

내가 갖고 있던 세상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지식을 하나님의 지식으로 자꾸만 대체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생각을 갖게되고 새로운 심령을 갖게되는 것입니다  물론 지식자체가 우리의 속사람을 새롭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바리새인처럼 오히려 지식을 알므로 자기의가 드러나고 [-9]0교만해질 수도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이 말씀의 지식을 사용하여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역사가 필요합니다.  (수동태 being renewed)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 배우는 것 자체로는 변화될 수 없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서 성령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필요)

여호수아는 110살이 되었어도 “나와 내집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라고 담대히 선포합니다.    죽음을 바로 앞둔 나이임에도 못하겠다 힘들다 지쳤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희 모두는 다 하나님을 안섬긴다 하더라도, 나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담대함이 있습니다  늙고 연약한 가운데서도 오히려 젊은 사람들보다도 더 확고하고 단호하게 믿음의 삶을 살것을 선포하는 이런 담대함을 가질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

저는 그 대답을 여호수아 1:8-9절에서 찾습니다 “이 율법책의 말씀을 늘 읽고 밤낮으로 그것을 공부하여, 이 율법책에 씌어진 대로, 모든 것을 성심껏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네가 가는 길이 순조로울 것이며, 네가 성공할 것이다. 9 내가 너에게 굳세고 용감하라고 명하지 않았느냐! 너는 두려워하거나 낙담하지 말아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의 주, 나 하나님이 함께 있겠다." 이 율법책의 말씀을 늘 읽고 밤낮으로 그것을 공부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의 마음과 생각을 채웠기 때문에 낙심치 않고 오히려 담대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우리가 낙심하기 쉬운 이유가 또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한번 주님의 말씀을 듣고 힘을 얻고 기쁨과 감사와 소망과 격려를 받았으면 이게 좀 지속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얼마가지 못합니다.  마치 육의 양식처럼 어제 먹은 밥이 오늘 나로 배부르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며칠분을 저장하게 두지 않으시고 매일 매일 필요한 분량이 주어진 것처럼 영적인 양식도 똑 같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얼굴을 본다든지 어떤 특별한 영적 체험을 하면 죽을 때까지 지치지 않고 열심히 주님을 섬길 것이라는 착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놀라운 체험을 해도 곧 낙심할 것이 찾아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마 6:34)  Each day has enough trouble of its own. 매일 매일 그 날에 겪어야할 괴로움의 분량이 있다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우리를 낙심케 하는 분량이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 영의 양식이 필요하고 매일 매일의 낙심을 극복할 매일 매일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3:21 23    "주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의 신실이 큽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보시면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그냥 새로워진다가 아니라 “날로 새로워진다"라고 말합니다 영어로는 DAY BY DAY Every day 매일입니다  매 주마다가 매 월마다가 아니라, 매일 매일 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낙심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속사람이 새로워질 것인가 싸움에서 속사람이 새로워질 것을 선택해야합니다  여러분 요새 우리는 갈라디아서로 큐티를 하고 있습니다 아침마다 여러분이 큐티하는 것은 낙심하지 않고 속사람이 새로워지겠다는 선택인줄 알고 큐티하시기를 바랍니다 (매일 매일 낙심할 것인가 기도할 것인가의 싸움에서 기도할 것을 선택해야합니다)


17 (왜냐하면)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preparing, produce, bring about) 18 (그러므로, 왜냐하면, 하면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왜냐하면, 겉사람은 점 점 늙고 약해지고 죽어가도 매일 매일 속사람이 새로워지면 낙심치 않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 가볍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하루 하루 힘들게 사는 분들은 “우리가 받는 환난은 가볍다”는 이 말에  동의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도바울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한 온갖 환난과 핍박과 여려움을 겪은 분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도바울이 “우리가 받는 환난이 경하다, 가볍다"라고 말씀했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모든 환난이나 어려움은 경한 것입니다. 가벼운 것입니다.

예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과연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 편한 멍에를 지고, 짐이 가벼운 삶을 살았습니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편한 멍에를 지고 가벼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바울이 환난이 가볍다고 할 때 또 예수님께서 내 멍에가 편하고 짐이 가볍다고 말씀하실 때  환난이나 고통이 없는 편하고 쉬운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지로  고후 5:4  바울 자신이 “우리는 이 장막에서 살면서, 무거운 짐에 눌려서 신음하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도 핍박과 순교의 삶을 살아야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 자신의 멍에는 편하고 자신의 집은 가볍다고 말씀하셨는가? 왜 사도바울이 우리가 받는 환난이 경하다라고 말했는가?  17 말씀 다시 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환난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과 비교되기 때문입니다  롬 8:18절 말씀대로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보는 자들에게는 이 세상에서 겪는 어려움은 일시적인 것이요 (잠간이요)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견디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낙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보며서 사십니까? 잠시 받는 가벼운 환난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는 기회로 삼으십니까?  지극히 크고 놀랍고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면서 사십니까? 그렇다면 잠시 받는 가벼운 환난 때문에 낙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18절을 읽습니다  (그러므로 -17절에 대한 이유도 되고 결과도 됩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we fix our eyes)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  1  (왜냐하면)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질 때에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집, 곧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닌,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압니다.  2 우리는 이 장막 집에서 신음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으로 덧입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한다는 것은 눈을 고정시켰다는 이야기입니다. (We fix our eyes)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눈을 고정시켰다는 말씀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이란  5장1절과 ,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우리가 새롭게 입을 영원한 집,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집을  바라본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우리가 육체가 점점 죽어갈 때에 낙심하면서 사느냐 아니냐는 무엇에 우리의 눈을 고정시키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이 세상에 집착할 것인가 아니면 죽음 후에 오게될 영원한 세상에 우리의 눈을 고정시키는가

태아들이 9개월간의 엄마 뱃 속에서 삽니다  이 9개월의 기간은 태아들이 엄마 뱃속에서  나와서 새로운 세상을 살기 위한  준비기간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 세상에서의 삶은  영원하고 아름다운 새로운 세계를 살기 위한 준비기간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습니다 고전 2:9)  고후 5 그래서 바울은  “우리는 차라리 몸을 떠나서, 주님과 함께 살기를 바랍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빌 1:23) -죽음의 낙심 극복

이제 매일 매일을 낙심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삶을 살 것인가는 저와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을 추구하면서 살 것인가 아니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살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현재 우리가 입고 있는 장막 집에 눈을 고정시킬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 우리가 입을 하나님이 세우신 영원하고 아름다운 집에 눈을 고정시킬 것인가.  우리는 매일 매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매일 속사람이 새로워 지는 삶 영원한 것에 눈을 고정시킨 삶  이런 삶을  선택하므로 바울처럼 극심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이 설교를 준비하는데 John Piper목사님의 설교가 많이 참고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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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당신은 낙심하십니까?  고린도후서 4:16-5:2

, 바울이 “낙심하지 아니하노라”할 때는 정말 귀를 기울여야한다. 바울은 목숨의 위협과 핍박과 환난과 어려움과 고통  그리고 자주 살 소망까지 끊어진 상황에서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정도의 스트레스 가운데 살았던 자이기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바울은 이런 극한 상황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었는가?

1.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간다는 것은 조금씩 죽어간다는 것이다.  점점 약해지고 힘들어지고 쉽게 다치고 쉽게 병들고 몸이 약해 지니까 마음도 약해지고 점 점 한숨 쉬는 일이 많아진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마음이 약해지거나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담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속사람이 새로워지되 날마다 새로워져야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며칠분을 저장하게 두지 않으시고 매일 매일 필요한 분량이 주어진 것처럼 영적인 양식도 똑 같다.  매일 매일 우리를 낙심케 하는 분량이 있다.  그래서 매일 매일 영의 양식이 필요하고 매일 매일의 낙심을 극복할 매일 매일의 은혜가 필요하다. 
"주의 사랑과 긍휼이 아침마다 새롭고, 주의 신실이 큽니다.” (애 3:23)


2.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 속사람이 새로워지면 낙심치 않는 것은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은 “가벼운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롬 8:18) 지극히 크고 놀랍고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면서 산다면 잠시 받는 가벼운 환난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we fix our eyes)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원함 이라 .. 주목한다는 것은 눈을 고정시켰다는 이야기이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눈을 고정시켰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이란,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우리가 새롭게 입을 영원한 집,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집을  바라본다는 말씀이다.  결국 우리가 육체가 점점 죽어갈 때에 낙심하면서 사느냐 아니냐는 무엇에 우리의 눈을 고정시키느냐에 달려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이 세상에 집착할 것인가 아니면 죽음 후에 오게될 영원한 세상에 우리의 눈을 고정시키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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