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의 인내를 가지려면” 데살로니가전서 1:1-7 9/10/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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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 우리 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제 한 살 기껏해야 두살에 불과한 신앙이 어린 교회임에도 계속적으로 심한 박해를 받아야했습니다. 이들 중 순교한 자들까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살전 4:13
이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인들과 일반 사람들과의 분명한 차이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을 소망이 없는 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소망이 있는가 없는 가의 차이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차이를 못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마지막 날에 죽음의 날에 그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끊임없는 영원한 소망의 시작의 날입니다. 그러나 불신자의 죽음은 영원히 지속될 절망의 시작입니다.
우리 인생은 그리스도인들이나 불신자나 모두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의 나그네로서의 여행을 끝나고 돌아갈 집이 있는 나를 반겨줄 집이 있는 것이 소망입니다. 단테는 그의 책「신곡」에서 지옥 입구에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자들은 소망을 포기하라!”라는 표시가 있다고 묘사합니다. 그러니까 인생이란 나그네길을 마치고 우리는 소망의 집으로 들어가느냐 아니면 절망의 장소로 들어가느냐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도란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갖도록 돕는 것입니다. 인생을 끝나고 나를 반길 돌아갈 집이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렇게 당부합니다. “여러분이 가진 소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하십시오.” (벧전 3:15) 믿지 않는 식구나 친구나 동료등 세상 사람들이 필요한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소망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만약 이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환난을 당할 필요도 없었고 순교를 당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포기하면 더이상 박해와 죽음의 위협을 당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믿음과 소망의 인내,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선택한 것은, 이 세상에서의 여행길이 아무리 험난하더라도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살 5:10)
이제 우리의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미국의 이민자들로 살고 있는 우리가 가진 믿음과 소망 때문에 큰 희생을 치루어야 한다든지 박해를 당하는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에 비해 너무 편하고 자유롭고 풍요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이라는 풍요하고 자유롭고 편한 환경 가운데 신앙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오히려 큰 도전과 위기에 직면해 있을지 모릅니다.
오늘 찬송가 가사에 의하면 “무섭게 바람 부는 밤 물결이 높이 설렐 때 우리 주 크신 은혜에 소망의 닻을 내리라.”고백하는데 오히려 평안하고 문제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에게만 소망의 닻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제가 지난 주에 말씀드렸지만 팔라지역에서 20년 사역했던 선교사님 말씀에 의하면, 그 지역의 인디안들이 교회모임에 잘 나오다가 그 지역에 카지노가 생기면서 떼돈을 벌게되니까 모두들 다 신앙생활을 포기하였다는 것입니다. 부자들이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 보다 어 힘들다란 말씀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민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민 초기 정착하는 시기에 힘들고 어려울 때 오히려 성도님들이 열심히 모이고 신앙에 열심을 냈습니다. 미국도 911사건이 터지고 전례 없이 많은 사람이 모였었다가 다시 평온해 지니까 썰물처럼 교회를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을것입니다.
한국교회가 1900대에 세계 역사상 전례가 없는 부흥을 경험한 것은 일제시대와 6.25의 힘든 역사적 상황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경제가 안정되고 풍요해 지면서부터 알이 갈 수록 신앙생활이 더욱 나태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캐나다의 해안도시 밴쿠버에서 내륙인 토론토로 물고기를 운반하는 수산회사에서 일어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초기에는 물고기를 편안하게 하는 환경을 모두 갖추었지만, 2주일간 기차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물고기들이 다 죽어 있었습니다. 실무진들이 실패의 이유를 면밀히 검토해 본 결과, 파도가 치고 서로 먹고 먹히는 생존경쟁이라는 자연적인 바다의 서식환경을 생각하지 못하고, 편안하게 과잉보호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그 후 탱크 안에 파도가 생기도록 조류를 만들어내고, 물고기들과 함께 상어 새끼와 작은 문어를 몇 마리 집어넣었습니다. 그 결과 물고기들이 이들에게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피해 다니느라 죽지 않고 모두 싱싱하게 살아있었다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환경이 풍요하고 편안하면 신앙이 죽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부러 고난을 자초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번에 태풍으로 인해 휴스턴과 커리비안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병들고 연약하고 경제적으로 법적으로 자녀들 때문에 힘들고 삶이 고달프고 어려운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고난을 낭비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움과 고통을 통해서 믿음과 소망의 인내를 배우고 아예 예수님께 확실하게 소망의 닻을 내리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낳기때문이다.” (롬 5:3-4)
문제는 오히려 삶이 편하고 어려움이 없을 때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재미있고 행복하다 보니까, 신앙보다는 재물, 외모, 집, 차, 돈지갑 등에 관심과 신경을 씁니다. 주님의 재림을 믿지만 별로 흥분되지도 주님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도 없어집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평탄하고 여유 있는 환경 가운데서도 소망의 인내를 지속할 수 있는가? 소망의 인내란 말을 영어성경에는 참음이란 뜻도 있지만 여러 영어성경이 steadfastness 즉 견고함 흔들리지 아니함이란 뜻으로 번역했습니다. 어떻게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가질 수 있는가?
특별한 묘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단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대는 이 세상의 부자들에게 명령하여, 교만해지지도 말고, 덧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도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셔서 즐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하십시오.” (딤전 6:17) 땅엣 것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1. 먼저 기도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극한 핍박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소망의 인내를 갖는 교회였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살전 5:4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깨어있기 때문에) (왜냐하면)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살전 5:4-6) 보통 다른 교회들은 일어나라 깨어라라는 명령을 하는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재림의 소망 가운데서 깨어 있었고 빛에 속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계속 깨어 정신을 차리라고 부탁합니다.
로마서 13:11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벧전 1:13 “그러므로 여러분은 마음을 굳게 먹고 정신을 차려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이 받을 그 은혜(에 여러분의 소망을 고정시키십시요 fix your hope completely) 를 끝까지 기다리십시오.” 살전 5: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엡 5:14,15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주님께서도 친히,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막 13:33 )
어떻게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위엣 것을 바라보는 소망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박해 가운데 있는 교회던 풍요롭고 자유가운데 있는 교회던 원칙은 똑 같습니다. 특별한 비법이 없습니다. 깨어 정신을 차리는 수 밖에는 없다고 성경은 반복해서 말씀합니다. 깨어 정신을 차리는 것이 무엇인가?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십시오. (벧전 4:7)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엡 6:18)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 4:2)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또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어라." (누가복음 21:36)
기도는 깨어있기 위한 전쟁입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한 전쟁입니다. 기도는 위엣 것을 바라보기 위한 전쟁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소망의 삶을 위한 전쟁입니다. 주님에게 소망을 두고 위엣 것을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갖고 살기 원하는 자는 반드시 깨어있는 전쟁 기도하는 전쟁에 승리해야하야합니다.
여러분은 소망으로 충만한 사람을 아십니까? 끊임 없이 위엣 것을 주구하는 사람을 아십니까? 제가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그런 분들은 예외없이 깨어 있어 정신차려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므로 정신을 차린 분들입니다.
주님께서 기도하다가 낙심하지 말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한 과부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이 과부는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판사가 귀찮아 할 정도로 간청하여서 결국 판사가 과부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 이야기의 결론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다시 오실 때에 믿음을 가진 자를 얼마나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18:8 NLT)
주님은 우리가 밤낮 부르짓는 자가 되시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을 가진 자가 얼마나 되겠느냐 한탄하십니다. 주님은 저와 여러분이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기도로 깨어있는 전쟁에 승리하여 소망을 붙들고 흔들리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기 위해서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갖기 위해서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저는 그 대답을 사도바울의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한 기도의 내용을 통해서 찾아봅니다. "주께서 여러분끼리 서로 나누는 사랑과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여러분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고, 넘치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그래서 주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굳세게 하셔서, 우리 주 예수께서 그분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잡힐 데가 없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살전 3:12-13) 풍성한 사랑을 베푸는 것이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거룩함에 흠잡힐 때가 없게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
사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미 이런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을 두고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겠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는 가르치심을 받아서, 10 온 마케도니아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에게 그것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더욱더 그렇게 하기를, 우리는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살전 4:9-10) 바울은 이미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영적으로 깨어있었지만 지속적으로 깨어있으라고 당부했던 것처럼 이미 이들이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고 있지만 더욱 그렇게 하기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고 소망하는 자들은 성도간에 서로 풍성하게 사랑을 나누어야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도 똑 같은 말씀을 합니다. (벧전 4:7,8)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십시오.
8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
인생의 여정을 떠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을 마치고 영원히 살 집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여정을 하는데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여행의 동반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동반자와 함께 더욱 행복을 누릴 수도 있고 힘든 것도 함께 잘 견딜 수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의 배우자를 그리고 자녀들 그리고 우리 교회식구들을 인생이란 여행의 동반자로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들이 서로 사랑할 때 우리가 그 미래에 누릴 천국의 삶을 현재적으로 맛볼 수 있습니다. 이 것이 소망으로 충만한 삶이요 충만한 가정이요 교회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서로 물고 뜻을 때 용서하지 못할 때 받아들이지 못할 때 화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소망이 없는 지옥을 이 세상에서도 맛볼 수 있습니다. 인생의 동반자가 서로 사랑치 않으면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절망을 경험합니다. 불행히도 많은 가정과 교회가 천국을 반영하기 보다는 지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동반자 역할을 해야할가?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하여 다음과같이 고백합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2:19-20)
사도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3 주에 불과한 짦은 기간 밖에는 알지 못했음에도 그들을 자신들의 소망으로 기쁨으로 영광으로 자랑의 면류관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몇년 전 한 형제님이 저와 개인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저와 끝까지 같이 있어주겠다란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관찰해 본 뒤에 결정하겠다가 아닙니다. 무슨 일 있어도 당신을 끝까지 믿어주겠다란 말이었습니다. 제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제가 그형제의 신임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자격이 있기때문에 바울이 그들을 자신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이라고 고백하였습니까?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그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그게 격려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에 관한 자격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정하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한 지체 한 지체를 위해서 주님께서 죽으실 정도로, 주님께서 자기 피로 사실 정도로 귀중한 분들입니다. 나이가 많건 적건, 신체적으로 건강하던 아니던, 많이 배워건 못배웠건, 잘생겼건 못생겼건, 가난하건 부자건, 능력이 있건 없건, 코드가 맞던 안맞던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속할 뿐 아니라 서로에게 속하게 하셨습니다. 서로에게 소망이 되어주도록 부르셨습니다.
각 각의 배우자에게, 자녀에게 그리고 우리 각 지체가 서로에게 자신의 기쁨이요 소망이라고 아예 작정하고 선포해야합니다. 제 아내는 저의 기쁨이요 소망입니다. 제 아내도 저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작정하고 선포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들은 저의 기쁨이요 소망인 것을 작정하고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저에 대해서 더 이상 관찰하지 말고 여러분들의 기쁨이요 자랑이요 소망이라고 작정하고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우리는 부족한 점들이 너무 많은 자들입니다. 특별히 제가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발짝 물러서서 다른 지체를 관찰하는 태도로 서로를 소망으로 삼기를 거부하는 것은 우리들 회개할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서로에게 속하게 하신 것은 서로를 소망으로 생각하도록 서로에게 소망이 되어 지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라고 믿습니다. .
언제까지 입니까? “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주님 오실 때까지, 우리 인생 끝나는 날까지입니다.
주님 강림하실 때 그들을 소망으로 기쁨으로 삼았다는 것은 그들과 함께 있을 때는 물론이고 육체적으로는 떨어져 있을찌라도 주님 오실 때까지 그들을 기억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들을 위한 기도의 끈을 결코 놓지않겠다는 말입니다. 끝까지 그들을 귀하게 생각하며 격려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 재림을 대비해서 내 인생 끝나는 날을 대비해서 붙들어야 하고 추구할 것이 무엇인가? 주님 재림할 때 혹은 내 인생 끝날 때에 무엇이 가장 문제가 되는가? 그 것은 내 재산도 아니고, 학력도, 미모도, 경력도 아닙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진짜 중요한 것은 나와 함께 서있을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 가운데 보내주셨던 분들입니다. 내 인생의 여정을 같이한 자들입니다. 내가 격려하고 나를 격려한 자들입니다. 내가 기도해 주고 나를 위해 기도해 준 자들입니다. 서로에게 소망이 되어 주도록 애쓰고 서로 돕는 자들입니다.
여러분들의 배우자가 그리고 자녀가 그리고 다른 지체들이 주님 강림하실 때에 인생 끝날 때의 소망으로 여기고 여러분들의 삶을 투자하십시요. 우리 모두가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서로의 기쁨이 되어주고 자랑과 소망이 되어주는 것 이 것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는 성도들 위엣것을 바라보는 자들의 삶의 내용입니다. 이런 삶을 살므로 주님이 약속하신 소망으로 흔들리지 않는 각 개인과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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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소망의 인내를 가지려면” 데살로니가전서 1:1-7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살전 4:13
“여러분이 가진 소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하십시오.” (벧전 3:15)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낳기때문이다.” (롬 5:3-4)
1. 깨어 기도하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5 (왜냐하면)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살전 5:4-6)
로마서 13:11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벧전 1:13 “그러므로 여러분은 마음을 굳게 먹고 정신을 차려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이 받을 그 은혜(에 여러분의 소망을 고정시키십시요 fix your hope completely) 를 끝까지 기다리십시오.”
살전 5:8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엡 5:14,15)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막 13:33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십시오. (벧전 4:7)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엡 6:18)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 4:2)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또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어라." (누가복음 21:36)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다시 오실 때에 믿음을 가진 자를 얼마나 보겠느냐? (눅 18:8)
2. 서로를 소망으로 여기고 사랑하라
. "주께서 여러분끼리 서로 나누는 사랑과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여러분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고, 넘치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그래 서 주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굳세게 하셔서, 우리 주 예수께서 그 분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잡힐 데가 없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살전 3:12-13)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을 두고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겠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하나님께로부터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는 가르치심을 받아서, 10 온 마케도니아에 있는 모든 형제 자매에게 그것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더욱더 그렇게 하기를, 우리는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살전 4:9-10)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십시오. 8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 (벧전 4:7,8)
.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살전2: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