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마태복음 5:1-12) 10/8/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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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 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 이요 5 온유한 자는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
지난 3월 12일부터 9번에 걸쳐 예수님이 말씀하신 8복 중 7가지 복에 대해서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8복의 마지막 복인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의 복”에에 대해서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담긴 마태복음 5장, 6장 7장 전체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혹은 산상설교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5장 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누구를 대상으로 이 설교를 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예수님께서 입을 열어 가르치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듣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예수님을 왕으로 받아들인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산상설교는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할 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산상설교의 첫부분은 복에 관한 설교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으로 진정한 복이 무엇인가를 가르치십니다. 하늘나라의 복은 어떤 환경의 변화나 외적행동의 변화 이전에 예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로 결정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은 그리스도 중심의 마음과, 생각과, 성품과 인격의 변화가 있어야함을 말씀하십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란 영적으로 가난한 자를 말합니다. 누가 영적양식을 주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극심한 궁핍가운데 있는 자를 말합니다. 영의 양식으로 오신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
애통하는 자란 마치 자식을 잃은 듯 부모를 잃은 듯한 슬픔을 말합니다. 자신의 죄에 대한 애통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자신의 “마음”이란 것을 깨닫는 자들, 자신의 모든 의는 더러운 걸레와 같다는 것을 깨닫는 자들입니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라고 절규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자신이 지속적으로 예수님의 구원을 받아야 할 죄인임을 철저히 자각하는 자들이 복이 있는 자입니다 (“죄를 많이 용서 받은 자가 예수님을 더욱 사랑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눅 7:36-50 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없다면 우리는 주님을 깊이 사랑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온유한 자란 목자되신 예수님의 통제 아래 있는 태도를 말합니다. 각기 제길로 갔던 양과같은 자기 중심의 삶이 아니라,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음성의 들으며 주님을 따르는 자를 말합니다. 주님의 다스림을 날마다 순간마다 필요로 하는 자들이 복이 있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란, 자기 중심적인 인간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올바르심 즉, 하나님의 뜻과 말씀 그리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대한 굶주림과 목마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의이시며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에 대한 주림과 예수님에 대한 목마름이 있는 자가 복된자라고 말씀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을 말합니다. 모든 도덕과 종교가 자비와 긍휼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우리 자신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긍휼을 받은 자로서 베푸는 긍휼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알고 경험한 만큼 긍휼을 베풀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긍휼은 마땅히 행할바요 긍휼을 베풀더라도 자랑할 것도 없고 교만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런 자가 복된 자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란, 불결한 것이 섞이지 않은 마음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두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여, 마음을 순결하게 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순결한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 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세상에 한눈 팔지 않고 온 몸과 맘과 뜻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편기자의 표현처럼“…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는 자입니다.” (성령님)
화평케 하는 자란, 하나님과 사람 간에 그리고 사람과 사람간에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도록 돕는 자입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불화의 문제는 가장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먼저 평화의 복음 (엡 6:25)을 증거하므로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돕는 일을 감당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간에 화해하도록 돕는 자입니다. (고후 5:18-19; 롬 3:17) 이런 자가 복된 자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10절을 보니까,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첫번째 복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로 시작하여 마지막 복이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하고 마칩니다. 시작과 끝이 "천국"입니다. 그러니까, 팔복의 말씀이 다 천국백성으로서의 삶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Theirs is the Kingdom of the Heaven 현재형입니다. 이 땅에서 현재적으로 경험하는 천국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 생활이 이 땅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의 - 올바른 것을 말합니다; (올바른 것은) 법을 의미합니다. derecho
올바른 관계 - 형제가 의가 좋다; 공의 - (모든 사람에게) 올바르게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치우친 인간의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 = 하나님이 보시기에 올바른 것, 하나님의 법을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를 말합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란 8번째 복은 특징이 많습니다. 팔복의 가장 마지막 복이요, 보충 설명까지 있는 가장 긴 복이요, 그리고 유일한 수동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예수님께서 제 3자에 대한 이야기에서 2인층으로 직접 제자들에게 말씀함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그리고, 또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다른 복은 몰라도 이 복은 다들 피하기 원하는 복입니다. 누가 박해를 받기 원하겠습니까? 제가 만약 여러분에게 God bless you ‘이번 주에 박해 받으세요.”하면 다들 기분 나빠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8복중에 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가?
이 말씀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땅에 천국백성으로서 마음이 가난하고 자신의 죄에 대해서 애통해 하며, 온유하며 하나님의 의를 목말라하듯 구하며 그리고 긍훌하며 마음이 정결하며 특별히 화평케 하는 역할을 하는 자라면 모든 사람들이 환영하고 모든 세상이 필요로 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의를 구하는 이런 사람을 왜 박해를 하는가? 그 대답이 v.11에 있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예수님께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과 예수님을 위하여 박해받는 것을 동일한 것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곧 하나님의 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올바른 분이시며, 예수님의 말씀이 올바른 말씀이요, 예수님의 뜻이 올바른 뜻입니다. 그러니까 의란 예수를 위해서 사는 삶을 말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의로운 삶을 살 수 있고 의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의가 아니고 다 틀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름대로 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고 박해하는 것입니다.
실지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땅 위에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들이 제 아버지를, 딸이 제 어머니를, 며느리가 제 시어머니를 거슬러서 갈라서게' 하러 왔다 그리고 '사람의 원수가 제 집안 식구'일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0) 같은 집안 식구라도 그리스도를 왕으로 받아들인 사람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간에 충돌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가 주후 313년도에 로마제국의 종교로 인정받기 까지 특별히 10황제가 기독교를 박멸키 위한 그 중 상상할 수 없는 박해를 했습니다. 눈을 빼내고 신체의 일부를 잘라내고, 몸을 불로 지지고, 녹은 납을 들이 붙고, 맹수들의 밥이 되게 하고, 화형 시키고, 끔찍한 고문으로 박해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죽였던 것입니다.
실지로 이 기간동안, 황제 숭배를 거부했음에도 유대인들은 이런 박해를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인들만 이런 박해를 받았는가? 왜 그리스도교만 박해를 받았는가?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믿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데 앞장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적극적으로 선포하고 전도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예수그리스도의 절대성을 자기에게만 간직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설득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그리스도교에 대한 많은 박해가 있었고 지금도 세계 곳 곳에 특별히 모슬렘지역과 인도와 중국과 북한에 기독교에 대한 공공적인 박해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목숨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라야한 지역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이나 남한에 서는 복음을 위해 피와 땀을 흘려 믿음을 지키고 전한 믿음의 선배들 때문에 많은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특별히 박해 받을 일이 거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자유스러워 지다 보니까 오히려 신앙이 나태해지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기가 너무 쉽습니다.
저는 지난 8월 초에 31개월간의 억류생활 강제노동생활을 끝에 캐나다로 돌아올 수 있었던 임현수 목사님이 자신의 경험을 간증하면서 자신이 경험한 고난이 은총이었다고 반복해서 강조해서 말씀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억류생활의 내용을 듣고 끔찍하다라고 표현했지만, 실지로 임현수 목사님은 그런 고난이 없었다면 자신이 어땠을까를 생각하면 끔찍하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왜 그가 만약 고난을 치루지 않았을 때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때에 끔찍하다고 말씀했는가? 만약 자신이 고난을 경험지 못했다면 자신 마음 속에 있는 불순물들을 제거하지 못했을 것이요 자신은 단지 훌륭한 종교 배우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제가 볼 때는 임현수 목사님은 주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순수하고 헌신된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1997년부터 150차례 북한 방문을 했습니다. 단지 배고픈 동포들이 너무 불쌍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방문한 것입니다. 보통 주일설교까지 다 마치고 주일 저녁에 떠나서 . 토요일에 귀국하는 피곤한 여행을 그토록 많이 했던 것입니다. 큰 교회를 목회하면서 동시에 그렇게 자주 북한을 방문한다는 것은 특별한 긍휼의 마음과 헌신이 없었다면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이런 고난을 당하지 못했다면 자신은 훌륭한 종교배우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루마니아 침례교회의 조셉 톤 목사님은 루마니아 공산당 정권과 독재자들에게 저항했던 유명한 복음주의자입니다. 후에 구소련의 몰락과 함께 동구 공산주의가 무너지면서 개방의 물결이 일어날 때, 복음주의 잡지사의 기자가 조셉 톤 목사에게 소감을 묻자 그는 "두렵습니다"라고 말했다고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박해받고 고난 받는 것을 은혜로 알고 주님을 믿었는데, 이제 고난이 은혜인줄을 모르는 성도들로 교회가 채워질까봐 두렵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말합니다.
시편기자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까지는 잘못된 길을 걸었으나,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킵니다….71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하게 되었습니다. 그 고난 때문에, 나는 주의 율례를 배웠습니다.” 119:67, 71
임현수 목사님의 고백이 사실이라면, 조셉 톤 목사님의 염려가 사실이라면, 시편기자의 고백이 사실이라면 고난이 은헤인 것을 경험치 못한 저와 여러분은 영적인 불순물이 우리 마음에 쌓이고 쌓인 자들이란 고백이 있어야합니다. 제 자신은 물론이지만 여러분들도 스스로 종교배우란 고백이 있어야할 것입니다. 주님에 대한 굶주림이나, 나의 죄에 대한 애통이나, 주님에 의해 온전히 통제받고 싶어하는 마음이나, 의에 대한 주림이나, 마음의 정결함이나,긍휼이나, 마음의 정결함이나, 화평케 하는 것이나 다 우리와는 상관 없는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된 자의 삶과는 전혀다른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유교의 경전 중에 서경이란 책에서 복을 다섯가지로 정의한다고 합니다. 1,수(壽) : 오래 사는 것입니다; 2,부(富) :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3,강녕(康寧) : 건강하게 사는 것입니다; 4,유호덕(攸好德) : 남에게 선행을 베풀어 덕을 쌓는 것입니다; 5,고종명(考終命) : 질병 없이 폐끼치지않고 살다가 고통 없이 편안하게 일생을 마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이나 대화의 주제나 소원을 보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보다는 유교에서 가르치는 복을 추구하는 삶을 산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리란 소망 외에는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는 복의 개념을 갖고 삽니다. John Piper목사님은 이 것을 진정한 비극이라고 말합니다.
영국의 죠지 맥크라우드라는 목사님은 이렇게까지 말합니다. 아무도 교회를 핍박하기를 원치 않는다. 세상사람이 볼 때에도 교회에 대해 핍박할만한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The greatest criticism of the church today is that no one wants to persecute it because there is nothing very much to persecute it about” George F. MacLeod ) 끔찍한 말입니다.
저는 전도대상자를 위해 기도하다가 저들이 환난을 통해서라도 예수님을 믿게 해달라는 기도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고난을 주십시요”라고 기도해야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다른 사람을 향하여 손가락질 하기 전에, 내가 먼저 회개해야합니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어떻게 우리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일부러 고난을 자청할 필요는 없겠지만 반면, 성경은 말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딤후 3:12) 경건한 삶을 살려고 하면 박해를 받게 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살면 반드시 박해를 받게 되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미국 신학교 교수님은 (마르바 던이란 리전트 칼리지 영성신학 교수) “만약 우리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직장 동료나 가족, 이웃으로부터 우리의 믿음때문에 핍박을 받아 본 적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이 진짜인지 자문해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때문에 핍박을 받아 본 적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원칙을 지키며 살지 못하고 있음을 가리켜 주는 표지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동의하십니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삶을 산다면 좁은 길을 걷는 삶이요, 빛에 거하는 삶입니다. 빛에 거하는 삶은 어두움을 드러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발하는 빛을 보고, 어두움에 속한 사람들이 깨닫고 회개할 수도 있지만, 자기 의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박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다 과속으로 달리는데 스피트 리밋을 지키며 운전하면 욕을 먹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성경은 악을 행하는 자들의 특징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롬 1:31) 사람들은 죄를 회개하려는 성향보다는 다른 사람들도 같은 일을 범하게 하므로 자신의 죄를 합리화 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올바른 일을 행하는 자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므로 양심의 위로를 받기를 원합니다.
모든 인간은 다 양같아서 모두 다 각기 제길로 갑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주님의 음성을 따르면.. 각기 제길로 가는 다른 양으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 있습니다. 핍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핍박하는 자가 소위 그리스도인이라는 아내나 남편일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 가장 친한 친구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내에서도 주님을 위해서 all the way 철저히 헌신하고저 하면 극단적이란 오해를 받고 왕따를 당할 수 있습니다. 심각한 이야기입니다.
평소에 친절하던 이웃이 복음을 증거하면 사납게 돌변할 수 있습니다. 예수만이 길이다라는 진리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 있습니다. 그리스도만이 옳은 길이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전하면 세상사람들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박해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인 저도 다른 사람의 핍박이나 평가를 많이 의식하기 때문에 담대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정말 문제는 게을러서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지 못하고 복음을 증거하지 못하는 삶을 살때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에게 마켓 앞에 가서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라고 말씀은 안드리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복음 증거를 위하여 게으르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는 충실히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또 한가지는 성경공부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의롭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데...)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최소한 기도와 성경말씀에 게을르지 않으므로 의를 위하여 살아가는 자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을 각오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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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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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10/8/2017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 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 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 (마태복음 5:1-12)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복은 천국의 삶을 의미합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Theirs is the Kingdom of the Heaven 현재형입니다. 이 땅에서 현재적으로 경험하는 천국을 말합니다
1. 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게 되는가?
"너희는 내가 땅 위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제 아버지를, 딸이 제 어머니를, 며느리가 제 시어머니를 거슬러서 갈라서게' 하러 왔다. 36 '사람의 원수가 제 집안 식구'일 것이다. (마 10)
.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까지는 잘못된 길을 걸었으나,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킵니다….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하게 되었 습니다. 그 고난 때문에, 나는 주의 율례를 배웠습니다.” 119:67, 71
2. 어떻게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삶을 살 수 있는가?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딤후 3:1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롬 1:31)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의롭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데...)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